코스는 노리소니오름을 시작해 열안지오름 등 3개의 오름을 잇따라 오르는 비교적 평탄한 12㎞에 이른다. 사진은 열안지오름 정상. 저멀리 제주시가지가 눈에 들어온다. 강희만기자 제주시내권 3개 오름 오르며 시가지 한눈에 조망 오름 이동하는 길에 풀나무·신화 등 갖가지 사연 앞서 걷는 사람의 발꿈치를 따라 한참을 오른 것 같다. 몸이 지친 탓에 키 큰 나무들이 뿜어내는 맑은 기운을 느낄 새가 없었다. 마지막 오르막길은 쉬이 곁을 내주지 않았다. 마침내 다다른 정상은 서른명 남짓 설 수 있는 평지였다. 눈 앞엔 제주시내가 펼쳐졌다. 일행들과 발딛고 선 주변은 울울창창했고 저 멀리 도심엔 높다란 콘크리트 건물이 만들어낸 회색숲이 있었다. "이른 아침 눈비비고 나온 삶터의 얼굴이 바로 저렇구나." 도시와 이웃한 오름에 오르니 새삼 일상의 번다함이 스쳐갔다. 9월 중순, 가을빛이 빠르게 밀려들 무렵이지만 햇살은 뜨거웠다. 가을볕 아래 총 12㎞ 가량을 걷는 동안 땀이 쏟아져 내렸다. 다른 일정보다 코스가 평탄하다고 했지만 중간중간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았던 길을 헤치며 걷는 일은 간단치 않았다. 가시덤불이나 삭아 쓰러진 뾰족한 나뭇가지를 앞선 걸음으로 나가 미리 치워준 사람들 덕분에 그나마 힘이 덜 들었다. 열안지오름 가는 길, 사방이 메밀꽃으로 둘러싸여 가슴을 뛰게 한다. 하지만 에코투어는 그저 오름을 오르는 일에서 그치지 않는다. 제주가 품고 있는 자연생태계와 다양한 문화자원을 가까이서 만날 수 있는 시간이다. 미처 몰랐던 사연이 산과 들에 있었다. 이날도 이권성 제주트레킹연구소장의 안내를 받으며 오름과 들에서 질기게 생명력을 이어온 풀과 나무, 제주신화 속 여신 자청비까지 길 위에 풍성한 이야기를 피워올렸다. 코스를 걷다 눈에 띈 으름과 잔대. 메밀밭길에서 오래도록 발길을 멈췄다. 이효석은 소설 '메밀꽃 필 무렵'에서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븟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라고 했다. 열안지오름 가는 길, 눈앞을 가로막는 이들이 온통 메밀꽃 뿐인 그곳에선 달빛 아래가 아니어도 가슴이 뛴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휴대전화를 들고 그 시간과 공간을 카메라에 붙잡아 두려는 모습이었다. 지난 10년간 제주지역 메밀 생산량과 재배 면적이 꾸준히 늘고 있다. 2004년엔 전국 메밀 생산량의 4%인 81톤에 불과했지만 2013년에는 26%인 500톤까지 뛰어 올랐다. '농경의 신' 자청비에 얽힌 신화엔 자청비가 하늘에서 가져온 곡식 종자 중 하나로 메밀이 등장한다. 거친 화산섬 제주의 구황작물이었던 메밀이 이 땅의 사람들과 얼마나 깊은 인연이 있는지 알 수 있다. 하이얀 메밀 꽃밭만 즐거움을 준 것이 아니다. 으름 덩굴이 모여있는 곳에선 다들 아이처럼 변했다. 갖가지 효능을 지녔다는 '산속의 바나나' 으름을 따먹겠다며 질척질척한 길을 마다않고 엉킨 풀나무와 씨름했다. 탐방객들은 유년의 어느 날을 그렇게 불러냈다. 섬은 뭍과 교류하며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고 있지만 이대로 멈췄으면 하는 것들이 있다. 오름과 들판에 깃들어 사는 개구리와 이끼, 물봉선, 오미자, 여뀌, 백도라지, 싸리나무 같은 존재들이 지금처럼 안녕하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탐방객들은 추억거리 하나씩 안은 채 다음을 기약했다. 선착순에 밀려 '삼수'끝에 참가했다는 신황영(제주시 노형동)씨는 "제주도내 오름을 여러 차례 올랐는데 이번과 같은 코스로 걸으니 새롭게 느껴진다"고 했다. '제주앓이'를 하고 있다는 백현·유진숙(서울)씨 부부는 "직장 생활로 1년간 제주에 살면서 에코투어를 경험한 적이 있어서 일부러 에코투어 일정에 맞춰 제주를 찾았다"며 "종전보다 천천히 여유롭게 걷는 길이어서 더욱 좋았다"고 덧붙였다. '2015 제주섬 글로벌 에코투어'는 앞으로 3회를 남겨 놓고 있다.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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