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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실칼럼] 영화 '인턴'이 주는 '경륜·열정'의 융합
인문학에 길을 묻다<16>
뉴미디어부 기자 hl@ihalla.com
입력 : 2015. 11.20. 16:50:16
한라산 윗세오름에 하얀 상고가 내렸다. 엊그제까지 붉게 타오르던 산야는 그렇게 백설을 포용하며 태고의 침묵을 맞고 있다. 이맘때면 영혼의 찬기가 뼈를 사무치게 시리게 하는 계절이기도 하다.

 젊은 청춘들은 일자리를 찾아 여기저기 헤맨다. 물론 일부는 소망하는 일자리를 잡아 희망에 부풀어 있을지 모르지만 많은 젊은이들은 희망과 절망의 반복의 상처 속에서 이 계절을 맞이하고 있을 것이다.

 또한 위풍도 당당하게 한 시절을 살아온 베이비붐 세대들이 정년퇴직을 하는 시기이며 이외에도 많은 이들이 조직 밖으로 나오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렇게 들어가고 나옴이 교차하는 순간이다. 내 아들과 딸이 부모대신 젊음을 불태워야할 자리인 것이다. 그렇기에 이제 부모세대인 나는 자리를 비워줘야 하는 것이다.

 서울의 탑골공원이나 역 근처, 지방의 복지관에는 점심때만 되면 풀죽은 우리 내 아버지 어머니들이 줄을 지어 모여든다. 자원봉사자들의 따뜻한 온정이 모이긴 하지만 그들의 가슴도 이때쯤이면 어딘가 모르게 쓸쓸함이 하늘거린다. 명절이 되면 고향 내려가는 열차표를 구매하려고 끝없이 줄을 섰던 6~70년대 풍경이 요즘에는 아파트 분양 신청이나 대형 백화점에 고급브랜드 상품세일 현장에서 아련히 오버랩 되는 풍경들이 차가운 날씨만큼이나 당연시되는 시기이다. 이렇게 이 시기의 이 계절은 사회의 많은 모습을 담고 있는 듯하다.

 젊음과 경륜이 융화되는 시대 '권위주의'

 사람들이 머릿속은 회색빛깔로 점철되고 세상사는 깊은 수렁으로 침묵하는 모습으로 투영된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행복한 국민을 만들겠다고 복지에 다양한 색상을 입혀 생색을 내기도 한다. 또한 통일에 관한 문제나 국정화 교과서에 관련된 문제가 정치권의 이슈로 매일같이 TV뉴스시간을 할애하고 있지만 막상 현실 세태에서는 밑바닥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민초들의 회색빛 고독이나 슬픔은 개인인생사로 밀려나있을 뿐이다. 얼마 전 어떤 젊은이가 벌써 몇 년째 직장을 찾지 못해 힘들어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부모를 잘 만나 세습의 영광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한계의 문턱에서 한 발이 아쉬워 성공의 발판에 발을 딛지 못하는 이들은 지친 영혼의 모습으로 허우적거리는 삶을 살아가기도 한다. '수저 현상'이 나타나는 사회의 세태가 이질감 있게 느껴지지 않는다. 들판의 억새들이 물기가 빠져 바람에 가볍게 '사그락 으스스' 소리를 반복하며 쓰러져가는 모습과 무엇이 다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옛날에 부모들은 젊은 세대의 삶속에 녹아있었다. 그들은 존중되어지고 젊음과 경륜이 융화되는 시대를 살았다. 그때의 삶을 권위주의 시대라 칭하기도 했다. 사람이 할 수 없는 일들이 흔히 벌어지고 있는 요즘의 사회를 보자면 개인의 마음속에 '양심'이란 단어가 있는지 의문이 갈 정도이다. 계층 간이나 세대 간에 단절된 삶의 시대를 살아가는 이 시대 대중들은 더불어 함께한다는 유행어와는 달리 혼자의 생의 짐을 짊어지고 힘들어하는 가운데 다양한 병패들이 노정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다.얼마 전 서울 출타 길에 아내와 아들과 함께 심야영화관을 찾았다. 요즘 꽤 인기가 있다는 '인턴'이란 영화다.

 「이 영화는 인쇄업부사장까지 지내다 은퇴한 70세 남성 벤(로버트드니로)이 30세 여성 CEO 줄스(앤해서웨이)가 운영하는 인터넷쇼핑몰 회사에 시니어 인턴으로 입사하며 일어나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다루는 영화였다. 줄스는 열정적으로 일을 하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쇼핑몰을 세운지 1년 반 만에 220여명을 고용하는 성공을 이루기도 한다. 그러나 신중함이 부족하고 변덕이 많다. 또한 그녀는 일과 가정 모두를 소홀히 하지 않고 모두 성공시키겠다는 스트레스에 시달리기도 한다. 초기에 줄스는 나이 많은 벤을 무시하며 행동하기도 한다. 하지만 같이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그의 조언을 자주 듣게 되면서 종종 벤을 찾아 나서는 모습으로 변한다. 하지만 줄스는 남편과 아이에게 온전히 신경 쓰지 못했고 남편의 외도를 눈치 채면서 정신적인 혼란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또한 대리경영인을 채용하느냐는 부분에서 고민에 극이 절정을 이른다.

 벤은 노련한 경륜으로 줄스의 문제에 대해 자문을 해주었다. '나를 사랑하라' 라는 벤의 말은 작은 울림이 된다. 벤은 '회사를 다른 사람에게 맡겼을 때 대리 경영인은 회사의 창립자인 줄스만큼 그 회사를 사랑할 수 있을까?'에 대한 점을 말해준다. 갈피를 잡지 못하는 줄스에게 정확한 방향을 제시해주어 판단을 확고히 할 수 있게 했다.」

로버트 드니로와 앤 해서웨이 주연의 영화 '인턴'.

 이 영화를 보며 한 가지 짚고 싶은 점이 있다. 정부에서 기업과 협력해서 '시니어 인턴' 채용정책을 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무상으로 돈을 주는 정책 쪽에 관심을 두는가하면 청년일자리에 메몰 되어 시니어들의 생산적 복지에는 관심을 덜 두는 경향이 있다. 시니어들의 복지 증대와 사회의 생산성 향상을 모두 이룰 수 있는 방향의 해결책을 이런 부분에 찾아보는 것은 어떤가 하는 생각이다. 고령화시대에 접어들면서 이제 70세 중반까지는 일을 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리고 젊은 사회의 열정적이고 다이내믹한 변화의 시간에서 시니어들이 세련되고 원숙함을 제공함으로서 불안전성을 좀 더 보완할 수 있는 긍정적 기능은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서울도심에 밤거리를 걸어왔다. 물론 이러한 생각과 해결의 바탕에는 시니어들이나 젊은이들 모두 '내려놓음'이 있어야 한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내려놓음'이란 사회의 보편적 편견들을 일컫는다.

 젊은 세대와 함께 어울려 같이 할 수 있는 열정의 공유

 인간들은 비움의 시간이 다가오면서 유달리 회색사유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경제적 관심도 중요하지만 이 시대 열정이 넘치는 젊은 세대들과 함께 어울려 같이 할 수 있다면 그들과 삶의 열정을 공유하며 행복한 삶의 가치를 누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복지에 대한 다양한 시책들이 널려있지만 항상 새로운 세대와 떠나려는 세대가 만나고 나누는 그런 융합된 사회가 조성되도록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큼직한 정책도 중요하지만 한사람의 인생도 돌아보고 챙겨주는 그런 서비스시대가 하루빨리 도래했으면 하는 생각이다.

 최근에 나타나고 있는 다양한 부적정한 양태들에 대해 조화 있는 질서를 창출할 수 있는 '자연'스러움이 있다면 시니어들도 활기찬 삶을 살아 갈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이다. 또한 젊은 세대들에게 더 원숙한 기회를 제공할 수 있으며 젊은 세대와의 융화가 더 자연스러워지고 사회 융합의 관점에서 이러한 선순환의 구조는 사회의 보편적 복지를 향상시키는 결과를 불러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조화로움과 자연스러움은 어디에서나 옳지 않음이 없다.

 창가에 한자락 바람이 불어온다. 물기 빠진 낙엽이 후두둑 떨어져 날린다. 생명 있는 것들이 새로운 생명을 위해 자리바꿈을 하고 있는 모습들이다. 많은 사람들은 남을 위해 나눔과 배려를 한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모두가 나에게 주는 아름다운 생명력일 뿐임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젊음의 열정과 노년의 경륜이 '함께 나누는 복지의 행복한 꽃'을 피우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끝없이 펼쳐지는 젊음의 창조적 열정들은 새로운 도전 속에서 그들에게 적합한 일자리가 창출될 수 있게 하며 여기서 나타나는 불안정성을 경륜과의 융합을 통해 보완한다면 하는 이상적인 생각으로 끝을 맺어본다.<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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