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단언컨대 당신들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부모는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하지만 저희는 아직 묻을 수 없습니다. 제 아이의 마지막 모습을 보고 반드시 진실을 규명해 주십시오." 한 유가족은 참혹했던 아이의 마지막 모습이 담긴 사진을 공개했고 몇명의 유가족은 실신하기도 했다. 600일이 지나서야 열렸던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청문회 현장의 모습을 우연히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보게 됐다. 충격적이었다. 600일전 매일같이 들려오는 뉴스와 소식에 한숨과 눈물이 마르지 않았던 그때의 감정이 다시 솟구쳤다. 하지만 청문회 모습은 공중파와 주요 언론에서는 볼 수 없었다. 도대체 '이런 나라'가 있을까. 승객 304명을 침몰하는 여객선에 남겨둔채 선장과 선원은 도망을 쳤다. 아이들은 배안에서 사투를 벌일 때, 부모들은 그 어떤 상황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애가 탔지만 '대한민국'은 단 한명도 구조하지 못했다. 2014년 4월 16일. 그 이후 국민 모두는 충격에 빠졌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반성과 다짐은 국민 모두가 함께 했다. '총체적 문제'였고 대통령은 눈물을 흘리며 '국가개조'를 선언했다. 그리고 600일이 지났고 국민들의 삶은 더 퍽퍽해졌다. 최근에는 충격적인 증언도 이어지고 있다. 한 민간 잠수사는 "세월호 안에 철문이 있었는데 그게 완전히 구부러져 있었다. 아이들이 탈출하기 위해 맨손으로 부수고 탈출하려고 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놀랍게도 청문회 장소는 국회가 아니었다. 새누리당 추천 위원들은 일찌감치 참여하지도 않았다. 참사에 대해 책임을 져야할 사람들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몰랐다'는 답변으로 일관했다. 참사 당시 20여명을 구조했던 제주도민이자 '의인'이었던 김동수씨는 무성의한 증인들의 답변에 울분을 참지못해 자해했지만 그의 이야기는 전달되지 못했다. 세월호 참사 당시 '파란 바지의 의인'이라고 불렸던 김동수씨는 여전히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었다. 부실한 대응으로 꽃다운 아이들을 포함해 304명이 희생된 세월호 참사다. 대형참사의 진상을 밝히고 대책을 세우기 위해 진행된 청문회에 주요언론이 외면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참사 이후 심각한 속보경쟁으로 '오보'를 남발했던 언론들이 아닌가. 그럼에도 반성하려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주요 방송과 신문에서 외면하자 유족들이 스스로 카메라를 잡고 인터넷으로 생중계를 해야하는 현실은 600일 이전보다 오히려 언론이 후퇴한 것처럼 비춰질까 두렵다. 세월호 그후 언론에 대한 신뢰도는 떨어졌고 여기저기서 반성의 목소리가 이어졌지만 이젠 아예 '보도 외면'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셈이다. '기레기'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기자는 '아줌마기자라서 더 죄송합니다'라는 칼럼을 썼다. 그리고 잊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여전히 부끄럽다. 아무리 감추려해도 진실은 감춰지지 않는다. 참사의 아픔과 희생된 이들을 기억하기 위해 만들어진 영화 '나쁜나라'는 변변한 개봉관이 없음에도 관객 1만명을 넘어섰다는 소식이 들린다. 영화를 본 누군가의 댓글에 또 다시 울컥한다. "슬픕니다. 꽃다운 아이들이 수장됐는데도 언제나 진실이 밝혀질까요? 응원합니다." <이현숙 교육문화체육부장>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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