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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를 이끌어온 선각자들](2)감귤시설 재배 첫 도입한 양민웅씨
"제주감귤 온난화 대응하면 세계인의 과일 자격 충분"
김지은 기자 jieun@ihalla.com
입력 : 2016. 01.21. 00:00:00

감귤시설 재배 첫 도입한 양민웅씨

1975년 일본으로 건너가 시설 재배 기술 배워
제주 하우스 감귤 첫 생산… 농가 대상 교육도
감귤 산업 살리기에 연구기관·농가 노력 강조

'대학나무'라고 불리던 때가 있었다. 누군가는 "나무에 감귤이 달리기만 하면 돈벼락이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화려했던 시절은 이제 과거 얘기로 남았다.

사람들은 감귤의 위기를 말한다. 지난해산 감귤 값이 폭락하면서 2002년 이후 13년만에 산지 폐기가 이뤄졌다. 1조원을 눈앞에 뒀던 제주 감귤 조수입은 2014년산 6707억원으로, 2013년산(9014억원)보다 25% 이상 급감했다.

제주에 감귤 시설 재배를 도입한 양민웅(79·서귀포시 보목리)씨도 감귤산업의 위기를 본다고 했다. 지난해 이상기온으로 감귤 품질이 악화된 것처럼 온난화로 인해 감귤 산업을 지탱하기 더 힘들어질 거라는 것이다. 그러나 양 씨는 여전히 희망을 얘기했다. 그 이유가 궁금해졌다.

시즈오카 감귤시험장 견학

▶일본에서 본 제주 감귤의 미래=서른 여덟, 양씨는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 정부가 지원하는 프로그램(AOTS)으로 현지에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다. 그가 선택한 분야는 양계업이었지만 실습 1년을 마치고 감귤로 방향을 틀었다. 그가 일본으로 간 목적이기도 했다.

"당시 제주에는 감귤 산업이 초창기였는데, 저는 제주 사람이니 감귤을 배워야 겠다고 생각했어요. 1년 실습을 마친 뒤 연수 담당에게 감귤을 공부해야 겠다고 했더니 허락해 주더군요. 그래서 시즈오카현에 있는 감귤시험장으로 가게 됐습니다."

시즈오카 감귤시험장은 그에게 새로운 생각을 하게 했다. 제주에도 사계절 내내 감귤이 나게 만들자는 것이었다. 일본에선 하우스 감귤 재배가 시작될 즈음이었다. 운이 좋게 시험장에서 시설 재배를 연구하는 다니구치 선생을 만났다. 양 씨는 그 아래서 감귤 재배 생리와 시설 재배를 배웠다.

"일본에 갈 때 보니까 온천지대에서 간이 하우스로 밀감을 재배하고 봄부터 여름에 수확하더라고요. 제주에는 겨울 한철만 밀감이 나는 상황이었는데, 그때 감을 잡았지요. 시설 재배를 전공해서 제주도에 연중 밀감이 날 수 있는 기반을 심어야 겠다고요."

감귤교육 현장

다니구치 선생 초청강연

▶제주 감귤 시설 재배의 시작=1979년 3월 고향 제주로 돌아온 양 씨는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시설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간이 하우스를 시작했어요. 열매 색은 파랗지만 맛은 꽤 괜찮았죠. 그런데 하우스가 바람에 날리면서 제대로 정착하지 못했습니다."

시설 재배를 하려면 자금이 필요했다. 양 씨는 중문에서 대영농장을 운영하던 재일교포에게 시설 재배 도입을 제안했다. 자본이 있는 농장부터 시설 재배를 시작하면 제주 전역에 안착시킬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제안은 받아들여졌다. 그는 일본 내 감귤 주산지인 아이치현 가마고리시에서 기술자를 불러들여 부족한 기술을 보완하며 하우스 감귤을 재배해 냈다. 1987년 제주에서도 하우스 감귤이 수확됐다. 제주에선 최초의 일이었다.

"대번에 대박을 쳤습니다. 특히 88올림픽 때 반응이 엄청 났지요. 하우스 감귤을 생산해 서울로 출하했는데 값이 1㎏ 당 7000~8000원까지 갔습니다. 당시 노지감귤의 열 배 정도의 가격이었죠. 하우스 감귤 붐이 일겠구나 싶었는데, 1990년대부터 하우스 감귤을 재배하는 농가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어요."

농가를 교육하는 일은 그에게 과제처럼 남았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지만 '제주 감귤 산업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컸다고 그가 말했다. "1975년 일본에서 온주밀감이 366만톤으로 과잉 생산되면서 자살 소동이 일어나는 등 혼란이 있었습니다. 제 은사이던 다니구치 선생이 이런 말을 하더군요. 당신은 일본의 이런 상태를 봤지 않느냐, 그러면 제주 밀감이 이렇게 되지 않도록 당신이 일본에서 공부한 값어치를 해야 한다고요."

스승의 말은 그가 농가 교육을 놓을 수 없었던 이유가 됐다. 양 씨는 다니구치 선생을 초청해 시설감귤 재배 기술 강좌를 열고 서귀포시 농촌지도소 겨울농민교육, 감귤원 간벌 교육 등을 맡았다. 1990년에는 서귀포시에 건의해 2년 간 감귤 재배 농민 200명을 데리고 일본으로 건너가 재배 기술을 보게 했다. 양 씨는 감귤 산업에 기여한 공을 인정 받아 2004년 제주도문화상을 수상했다.

누군가를 가르치는 만큼 배움에 소홀히 할 수 없었다. 양 씨는 지금도 1년에 한 두 번 일본에 다녀온다. 매달 5권씩 일본에서 받아보는 감귤 재배 관련 잡지는 그의 서재에 차곡 차곡 쌓였다.

일본 감귤농장 연수단 인솔

양씨가 매달 일본에서 받아보는 농업관련 잡지.

▶감귤 위기? 온난화 대비해 세계인의 과일로=감귤 재배 한길을 걸어왔기에 그는 제주 감귤이 처한 상황이 더 절실하게 다가온다. 그는 "지금부터가 제주 감귤의 위기 상황"이라고 했다. 가장 우려하는 것은 온난화. 지난해 이상기온으로 감귤 품질이 하락한 것처럼 온난화에 대응하지 못한 것이 감귤산업에 큰 위기요인이 될 것이라는 진단이다.

"지난해에는 여름이 덥지 않아 생리낙과가 적었고 비가 많이 와 부피과(껍질이 뜨는 현상)가 엄청나게 발생했죠. 이게 바로 온난화에 대응하지 못한 위기입니다. 그런데 아직 제주에는 온난화에 대비한 연구가 없다는 게 한심스럽죠."

그는 한 해 농사를 "자연에만 맡길 수 없다"고 했다. 날씨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품질 좋은 감귤을 생산하는 법을 고민해야 한다는 뜻이다. "한 예로 전정 방법도 온난화에 맞게 바뀌어야 합니다. 나무에 햇볕을 잘 비추게 하는 것은 좋지만 너무 강한 햇볕에 노출되게 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이파리에 만들어진 광합성 물질이 엉뚱하게 소모되기 때문이죠. 온난화 시대에는 여러 군데로 들어간 햇볕이 이파리에 맞아 산란될 수 있도록 전정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양 씨는 좋은 감귤을 만들기 위한 농가 노력도 강조했다. 그 하나로 수확 후 수체 영양 관리와 착과 관리 등에 신경을 쓸 것을 조언했다. "산모가 해산한 뒤에 몸조리를 잘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건강 상태가 좌우됩니다. 밀감도 똑같습니다. 겨울에 영양 관리를 잘해 주지 않으면다음 해 감귤 생산성에 영향이 미치죠. 그런데 대부분의 농가들이 이를 전혀 모르고 있어요."

감귤의 위기를 말하지만 그는 제주 감귤의 가능성을 주목한다. 제주 감귤이 세계적으로 과일의 여왕이 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항암 등의 효과를 지닌 감귤이 당도를 넘어 좋은 '식미(食味)'를 갖춘다면 충분히 가능할 거라고 그는 말한다.

"제주는 토양이 화산회토이기 때문에 감귤의 신맛이 많이 내려갈 수 있는 여건이 아닙니다. 이게 제주 감귤의 장점이 될 수 있습니다. 그냥 달기만 한 오렌지나 다른 나라 감귤보다 질리지 않게 먹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사람들은 감귤의 당도만 얘기하지만 당도와 함께 '식미'가 좋은 감귤을 만드는 법을 고민해야 합니다. 일본의 한 학자는 감귤에 아미노산이 13% 들어 있으면 식미가 좋아진다는 연구 결과를 내기도 했습니다. 실제 시험해 보니 감귤 맛이 확실히 달라지더군요. 이런 감귤을 만들면 수출한다면 어떻게 안 팔릴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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