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제주로 오고 있다. 관광객은 1300만명 시대를 열었고 인구는 64만명을 훌쩍 넘겼다. 동북아시대를 열어가는 대한민국의 허브, 변방이었던 제주섬이 이제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제주의 외적인 성장은 중요하다. 사람이 모여야 경제규모가 커지고 지역의 권한도 강화된다. 그러나 지금의 제주 상황은 여러 면에서 나타나는 기형적 조짐들로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언제부턴가 하늘을 찌를듯 빼곡히 들어선 고층빌딩과 고속화도로마저 차량으로 가득 들어차버린 교통체증, 평화롭던 섬전체가 건설공사로 신음하고,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땅값으로 조냥하던 제주인들은 돈바람을 우려하고 있다. 섬에서 살았기에 부러워했던 육지부의 선진문명들, 오랜기간 동경했던 대도심의 풍경이 목전인데 왜 이리 불안하고 허탈해지는 것일까. 제주는 섬이다. 누가 뭐래도 섬은 환경이 전부이며 그 고유성이 보존될 때 섬의 정체성은 살아나고 섬사람은 숨쉴 수 있다. 사업을 하는 내가 '녹색섬 제주'를 끊임없이 외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개발이 전제일 수밖에 없는 국제자유도시 제주는 이미 출항한지 오래고, 대대수의 도민들은 보존이 필수인 '세계환경수도 제주'에서 미래비전을 찾고 있다. 물과 기름같이 융합될 수 없는 상반된 칼날, 개발과 보존이라는 양날의 화두는 늘 제주를 혼돈에 빠트리고 우리를 갈등하게 만들었다. 제주섬은 단일광역이지만 도농복합적 성격이 짙은 두 개의 축을 가지고 있다. 이미 도심화된 제주시 상업지역과 어농 위주의 마을단위인 서귀포가 그것이다. 때문에 제주시권역은 특별법이 보장하는 국제자유도시의 핵심으로 물류와 자본이 원활하게 드나드는 글로벌 비즈니스타운으로 건설해야함이 맞지만, 경관이 아름다운 서귀포는 농어촌의 마을환경과 자연여건을 살려 삶을 재충전하는 힐링쉼터로 조성하는 것이 옳다. 눈에 보이는 대조적인 외형처럼 그 속살도 지역의 환경여건에 맞춰 채워져야만 한다. 특히 서귀포는 관광단지가 있는 중문과 혁신도시가 있는 신시가지, 서부지역의 영어교육도시 권역을 제외하고는 올드 빌리지 개념의 농어촌 섬마을 정체성을 지속적으로 유지해야만 한다. 뉴타운으로 조성되는 제주시 도심과 달라야 하는 것이다. 한라산을 기점으로 나누었던 산남과 산북의 경계처럼 도시계획과 개발환경도 기준과 형태를 달리하여 건축고도와 개발권 등은 선별적으로 제한해야 한다. 그리고 개발권한을 제한하는 지역에는 이에 상응하는 지원정책을 수립·시행하여 재산권행사에 따른 불평등은 해소하고 섬마을 고유성은 보존하는 선진 환경정책의 수위를 높여가야 할 것이다. 반면에 제주시 권역은 제주시 원도심을 기점으로 반경을 그리듯 개발영역을 계획적으로 확대해 나가야 한다. 그래야 땅값이 싼 곳을 찾아 중산간으로 치고 올라가는 난개발을 차단할 수 있다. 그렇지 않는다면 상대적으로 지가가 높지 않은 읍면 마을단위에 투기성 짙은 무계획적 난개발의 가능성이 높아지고, 제주섬 곳곳에 구도심의 공동화 현상이 산발적으로 재현될 확률이 높을 것이다. 제주는 지난 일주일 동안 예기치 못한 폭설과 한파에 고립되어 뉴스의 중심에 있었다. 공항에서 난민처럼 추운 밤을 새워야 했던 방문객들과 쌓인 눈무게로 파손된 시설물에 한숨을 지었던 농민들의 모습에 가슴이 시렸다. 아름다운 섬 제주일지라도 자연이 보장해주지 않는다면 섬의 평화는 존재할 수 없다는 진실, 나는 재해의 아픔 속에서 자연의 위대함을 보았다. 회사매출을 걱정해야하는 내가 제주를 걱정하고 나서게 된 것은 폭설의 한파가 가져다 준 경고, 이를 잊는다면 어머니 품같은 제주의 봄 햇살은 영영 못 볼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허경자 서귀포문화원 부원장>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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