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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를 이끌어온 선각자들](8)진성기 제주민속연구소장
"복잡하면서도 보배로운 제주문화에 일찍이 매료"
채해원 기자 seawon@ihalla.com
입력 : 2016. 05.12. 00:00:00

제주문화에 대한 애정으로 일찍이 각종 민속자료를 수집해 '국내 사립박물관 1호'로 통하는 제주민속박물관을 운영해온 진성기 제주민속연구소장이 이 땅에 살고 있는 제주의 젊은이들이 제주어든 무엇이든 제주문화의 한 부분에 관심을 가져 고민하고 탐구했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하고 있다. 강경민기자

'국내 사립박물관 1호' 제주민속박물관 개관
제주도민요·속담 등 민속관련 자료집 30여편
"제주도민은 제주라는 백과사전의 한 페이지
젊은이들 제주문화 관심 갖고 탐구했으면…"

"제주문화는 한반도 문화와는 다른 이질적이고 이색적인 문화에요. 한반도 문화에 몽골문화, 해안도서적 문화가 섞여 있죠. 복잡하면서도 보배로운 것이 바로 제주의 문화입니다."

제주문화의 가치를 일찍이 알아보고 한평생 제주 민속문화를 직접 채록하고 기록한 이가 있다. 81세 고령에도 제주문화의 가치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 제주민속연구소 진성기 소장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리의 것, 제주의 것을 업신여기던 때 제주문화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그의 노력을 통해 지금은 수집하려고 해도 수집할 수 없는 풍속들은 기록으로 남았고, 오늘날 제주민속 연구의 기초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잃어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에 수집=어린시절 그는 어머니가 민요를 들려주고 할머니·할아버지가 제주 속담을 이야기하던 일상 속에서 보냈다. 그렇게 그는 자연스럽게 제주 향토 민요와 전설에 애착을 갖게 됐고, 중학교 시절 처음으로 민요와 전설을 수집했다.

본격적으로 제주민속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한 건 대학시절부터였다.

"제주만의 문화를 잃어가는 것이 너무 안타까워 수집해야겠다고 생각했지요. 민속에 대해 공부하면서 유·무형의 제주 민속문화를 집대성하겠다는 1차 목표를 세웠어요. 허허허."

그는 제주 민속문화의 집대성이란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집요하게 자료를 모으고 연구했다. 발품을 팔아 모은 자료를 제주도 민속관련 자료집으로 낸 것만 해도 대학교 3학년 때 완성한 '제주도 민요 제1집', '제주도 속담 제1집'부터 최근의 '한라산 옛말 1편'까지 모두 32편에 이른다. 권수로만 50~60권에 달하고 분야도 민요, 속담, 신화부터 세시풍속, 민담, 무속까지 다양하다. 자료수집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그는 그 과정마저도 즐겼다.

제주무속굿 현장을 누비던 시절의 진성기 제주민속연구소장(왼쪽). '청년 진성기'의 모습이 담긴 흑백사진이다.

"제주 60여만 도민은 제주라는 큰 백과사전의 한 쪽과 같아요. 제주도민을 만나고 그 속의 제주문화를 기록하는 일은 백과사전 한페이지를 넘기는 것 같은 즐거움이었지요."

그는 마침내 1964년 '국내 사립박물관 1호' 제주민속박물관을 개관하고, 그간 수집한 450여점의 유물을 전시했다. 제주민속을 궁금해 하는 도민은 물론 관광객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지만 운영은 순탄치 않았다. 어려울 때가 많았지만 제주민속 문화를 지키고 있다는 자부심, 기초 자료를 남겼다는 긍지가 그를 버티게 했다.

"지금은 수집하려 해도 제주민속문화를 제대로 알고 쓴 사람들이 돌아가셔서 쉽지 않잖아요. 그래도 그 때 고생스럽게 모은 자료들이 지금 제주문화를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모습을 볼 때면 그 동안 어려웠던 점들이 씻은 듯이 사라지는 것 같아요."

2014년엔 제주의 민속 연구와 지역의 문화 발전에 조그마한 보탬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일평생 수집한 민속문화자료를 제주대에 기증했다. 무신궁(당신상) 140여점과 울쇠(무속악기) 등 1만여점, 채록해 펴낸 출판물, 현장조사의 결과물인 사진과 녹음자료 등 모두 3만여점에 이르는 자료다. 아쉬울 만도 하건만 그는 "제주대학교가 그 자료들을 잘 관리하고 보존해줄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밝혔다. 올해 초엔 제주대박물관에 그 자료들을 전시한 한집민속관이 개관돼 후학들은 물론 일반 관람객들도 접할 수 있게 됐다.

진성기 제주민속연구소장은 2014년 제주대에 제주민속박물관 소장품 3만여점을 기증했다. 사진=한라일보 DB

▶"제주문화 사라지는 속도 너무 빨라"= 뇌졸중으로 건강이 좋지않지만 요즘도 그는 어떻게 하면 사라지는 제주문화를 지키느냐 하는 문제로 고민중이라고 했다. 예전에는 교류가 단절돼 많은 부분이 자연스럽게 보존됐지만 자유로운 왕래가 가능해진 요즘엔 민속문화가 사라지는 속도가 급속하게 빨라졌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 남아 있는 제주도 문화만이라도 제대로 지키기 위해서는 제주어를 보존하는 노력이 절실하다. 제주문화를 제주어로 풀어내야만 제주문화가 상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그는 몸이 불편한 지금도 '한라산 옛말 2편'을 탈고하는 등 제주문화 보존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는 제주민속 보존을 위한 새로운 바람들도 털어놨다.

"제주말이 사라지는 지금, 현실적으로 어려운 얘기지만 제대로 된 제주문화를 사람들에게 보여주려면 제주말로 제주문화를 설명하고, 제주민요가 나오는 복합 상설전시관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나는 제주도 젊은 사람들이 제주말이든 무엇이든 제주문화의 부분, 부분들에 대해 고민하고 탐구해나갔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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