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삶은 실패했지만 정신은 실패하지 않았고, 저는 실천했습니다." 또렷한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그녀'는 예술에 대한 열정과 신여성으로서의 갈망을 간직했던 '나혜석(1896~1948)'이다. 혼불문학상 수상자인 박정윤 작가가 6년 동안 써내려 간 일대기를 정리해 '나혜석, 운명의 캉캉'을 냈다. 나혜석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이자 '근대적 여성운동가'이며 '독립운동가'이자 '탁월한 문필가'이다. 그 이름에 따라붙는 수많은 수식어만큼이나 나혜석의 삶은 파란만장했다. 열일곱의 나이에 오른 도쿄 유학길, 유부남과의 첫사랑, '불륜녀'라는 지탄에 '이혼녀'라는 딱지까지 덮어쓴 나혜석은 그 와중에도 그림 그리기를 멈추지 않으면서 세상을 향해 소리친다. 감성적 문체와 예민한 문제의식으로 밑바닥 삶을 촘촘하게 복원하고 사회의 여러 문제를 민감하게 읽어내는 작가 박정윤은 이 책에서 '영원한 신여성' 나혜석의 비극적 운명에 눈길을 던진다. 작가는 나혜석이 활발하게 활동하던 일제강점기뿐만 아니라 해방 후부터 한국전쟁 전까지의 사회상도 세밀하게 담아낸다. '현모양처'만이 여성을 평가하는 유일한 잣대로 휘두르던 당시, 작가가 그린 나혜석의 비극적 운명은 절절하다. 또 운명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적극적으로 대처해가는 여러 인물들의 결말은 애잔하다. 작가는 연민으로, 애증으로, 슬픔으로 그녀의 일대기를 써내려간다. 처음에 비극적 삶에 연민으로 끌렸지만 애증과 슬픔으로 남았다. 작가는 "어릴 적 언니들 책장에 꽂혀 있던 나혜석에 관한 얇은 책에 담긴 그녀의 자유로운 삶과 비극적인 운명에 덜컥, 발목 잡혔다"고 말한다. 그렇게 작가는 6년 동안 나혜석이라는 인물과 처절한 싸움을 했다. 그렇게 비극적 운명을 파헤쳤고 비로소 평온한 저녁처럼 단정해졌다고 고백한다. 이 책에서는 나혜석의 비극적 운명이 날줄이라면, 주변 인물들의 운명을 씨줄로 엮고 있다. 어릴 적부터 나혜석과 여러 날들을 함께하며 그녀의 운명에 깊숙한 흔적을 남긴 엘리제 마담, 나혜석의 죽음을 믿지 못해 그녀의 마지막을 파헤치는 엘리제 마담의 딸 윤초이, 아버지 독고휘열과 나혜석의 인연 때문에 그녀의 삶을 소설로 그리는 독고완, 뜻하지 않게 독고완과 윤초이의 원고를 습득하면서 자신의 할아버지, 할머니와 나혜석의 인연을 알아가게 되는 '나'. 작가는 소설 속 소설이라는 틀을 빌려 이야기하고 있다. 작가는 미술계에서 배척당하는 와중에도 화가로서의 열정과 선각자로서의 실천을 멈추지 않았던 그녀의 지난했던 삶도 꼼꼼하게 그려낸다. 푸른역사. 1만5000원.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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