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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담론]제주 식물이름에 숨겨진 암호
편집부 기자 hl@ihalla.com
입력 : 2016. 06.02. 00:00:00
진달래와 빙떡, 이 두 단어의 관계는?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이는 이들 사이에는 절묘한 연관관계가 숨어 있다. 제주도의 식물이름 속에 숨겨진 암호를 풀면 그 궁금증은 아주 쉽게 해결될 수 있다.

제주도에는 진달래, 산철쭉, 참꽃나무 등 세 가지의 진달래가 있다. 신기하게도 한반도 거의 전역에 흔히 분포하는 철쭉나무는 없다. 진달래의 지방명은 전국 대부분에서 참꽃이라고 한다. 철쭉나무는 진달래를 참꽃으로 부르는데 대응하여 개꽃으로 부른다. 제주도에 자라는 참꽃나무는 또 다른 종이다. 이 종은 키가 거의 5m나 되는 대형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에만 자란다. 제주도 지방명은 신달위, 신달레, 진달레, 박달레낭이다.

진달래 하면 진달래와 철쭉나무를 떠올린다. 전자는 참꽃, 후자는 개꽃이다. 먹을 수도 있고, 관상용, 장식용으로 유용한 꽃은 참꽃, 거의 쓸모가 없는 것은 개꽃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면 진달래와 산철쭉을 제주도에서는 어떻게 불렀을까. 김문홍 전 제주대교수가 1977년에 발표한 논문에서 진달래는 안짐베기고장낭 또는 진달레, 산철쭉은 진달레 또는 젱기고장(토평)이라고 한 바 있다. 지금도 필자의 고향인 신효에서는 산철쭉을 정기고장 또는 전기고장이라고 한다. 다만 이 지역에서는 진달래와 산철쭉을 구분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빙떡을 정기 또는 전기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지금도 서귀포지방에서는 빙떡을 상당히 낯설어한다. 그럼 빙떡과 전기의 차이는 무엇일까. 제주도학의 선구자 석주명선생은 1947년 제주도방언집에 빙떡(북)=젼기(남)로 기록해 놓았다. 그는 제주도 방언을 남부어와 북부어로 구분하였다. 같은 떡인데 산북에서는 빙떡, 산남에서는 젼기라고 다르게 한다는 것이다. 이 전기라고 하는 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떡이 아니다. 메밀가루를 솥뚜껑을 프라이팬 삼아 부친 것으로 전이라고 해야 맞는 것이다.

진달래의 제주어를 석주명선생은 1950년 제주도자료집에 남부와 북부를 구분하지 않고 명확히 전기꽃으로 표기했다. 이것은 진달래를 전기꽃으로 널리 사용한 증거라고 할 수 있다.

그럼 전기와 전기꽃은 어떤 관계인가? 전기를 부칠 때 한층 예쁘라고 아니면 또 다른 어떤 뜻으로 장식한 꽃이 바로 이 꽃이다. 전기는 지금처럼 무채를 소로 하여 만 형태가 아니라 둥글게 부친 전 위로 전기꽃을 꾹꾹 눌러 장식한 형태였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전기를 부친다는 것은 전을 캔버스 삼아 꽃으로 예술품을 창작하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옛날 화전놀이할 때 만들던 화전은 바로 이런 것이었을 것이다. 화전놀이(花煎-)의 한자표기에서도 떡 병자를 쓰지 않고 전 전자를 쓰는 것은 이 때문이다. 서귀포에는 지금도 이런 봄맞이행사를 기억하는 분들이 많다.

그럼 전기꽃은 어디서 유래했을까. 2013년 국립수목원에서 펴낸 '한국의 민속식물'에는 놀랍게도 제주도에서 아주 먼 함경도에서 진달래를 천지꽃이라고 채록한 내용이 있다. 중국 동북지방의 조선족도 이렇게 부른다고 한다. 전기고장과 천지꽃 사이에는 무슨 관계가 있는 건 아닐까.

진달래의 제주이름 전기꽃에는 이와 같이 우리민족의 음식문화, 집단의례문화 같은 오래된 암호가 숨어 있는 것이다. 제주도에는 2000여 종의 관속식물과 수많은 바닷식물이 있다. 이 식물들 모두 고유의 이름이 있다. 그 속에는 저마다의 암호가 숨어 있으니 이를 잘 풀어낸다면 미래를 여는 또 하나의 실마리가 나오지 않을까. <김찬수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장·이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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