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란 견뎌볼 만한 것일까. 막막한 오늘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작가 은희경의 여섯번째 소설집 '중국식 룰렛'이 출간됐다.

그 이름만으로 하나의 브랜드라 이를 정도로 이십년이 넘는 세월동안 꾸준히 세련된 감각을 유지하며 작품활동을 이어온 은희경은 언제나 빛나는 문장들로 독자들의 외롭고 지친 마음을 보듬어주었다. 이번 소설집에 실린 여섯 작품은 술, 옷, 수첩, 신발, 가방, 사진, 책, 음악 등 우리가 늘 가까이하고 삶에서 놓을 수 없는 사물들을 소재로 하고 있다.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의 영화에서 제목을 따온 표제작 '중국식 룰렛'은 불운과 행운, 잔인한 운명과 악의에 관한 이야기인듯 서두를 뗀다. 라벨을 숨긴채 세개의 잔에 든 술을 한 모금씩 맛보게 한 후 그 중 하나를 선택해 동일한 가격에 주문하게 하는 K의 독특한 술집 운영방식부터가 운의 시험으로 소개된다.

두 남녀의 이야기가 교차편집된 '장미의 왕자'에서도 세상의 거짓과 나의 거짓, 우연과 암시, 그리고 운명과 비극이라는 단어들이 먼저 눈길을 끈다.

삶은 작은 우연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익숙하지만 낯선 깨달음을 이 책은 일깨워준다.

이 책은 작가가 8년 전부터 올봄에 쓴 소설까지를 한권으로 묶었다. 작가는 이 소설을 쓰다가 박경리 선생의 부음을 들었다. 5월 제주에 왔던 그는 당일 항공권을 구하지 못해 긴 밤을 보내야 했다. 그는 장례식에 다녀오니 소설이 다르게 보였다고 고백한다.

작가는 "충분히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할 때 쓰기 시작하지만 매번 다른 것을 쓰게 된다. 쓰고 있는 동안 겪게 되는 일들이 소설 속으로 들어오기 때문이다. 우연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고 말한다. 작가의 인생이 소설작품에 어떻게 개입되었는지를 찾는 재미도 쏠쏠하다. 문학동네. 1만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