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온라인으로 일본 오키나와 여행상품을 주문했더니 집으로 책 한 권이 도착했다. 동양의 하와이, 일본 최대의 휴양지로 불리는 오키나와 여행 안내서였다. 북부, 중부, 남부, 나하 등 지역별 유명 관광지와 맛집, 숙박시설이 상세히 담긴 책이었다. 말미엔 오키나와는 어떤 곳인가부터 여행 회화까지 '여행 필수 정보'가 소개됐다. 그 책은 오키나와를 여행하면 경쟁보다 공존, 효율보다 여유를 중요시하는 인정많고 순박한 오키나와 사람들에게 매료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것이 오키나와의 '거짓 얼굴'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오키나와 출신으로 아쿠타가와 문학상 등을 수상한 메도루마 슌도 그런 인물이다. 그는 '치유 공간'이라는 관광 이미지를 위해 오키나와 전투, 미군기지 등 오키나와의 어두운 현실이 왜곡되고 있다고 본다. 그래서 일본 본토 사람들이 오키나와 민속을 익히고 방언을 배우는 '오키나와 붐'을 달갑게만 볼 수 없다. 제주의 안행순씨가 번역해 내놓은 메도루마 슌의 '오키나와의 눈물'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일본 안에 숨어있는 '남쪽'의 아열대 자연과 이국 정서를 즐길 수 있고 일본어가 통용되며 치안도 나쁘지 않죠. 오키나와도 기지 의존도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편으로 관광에 주력하고 있는 터라 서로의 욕망이 중첩되어 있습니다. 오키나와인의 관광업 의존도가 높아짐에 따라 관광객을 받아들이기 적합한 호스피탤러티(환대)의 육성이란 명목으로 지역문화는 물론 인간성과 육체까지 관광에 종속화되고 있습니다." 최근 서울에서 발행되는 어느 시사주간지가 제주도 특집을 다뤘다. 거품이 빠졌다고는 하지만 '제주살이의 로망'은 여전한 오늘날의 풍경이 읽혔다. 흔히 말하는 '토착민'과 '이주민'을 고루 등장시켜 해녀, 제주4·3, 오름에 얽힌 사연부터 부동산 광풍, 중국 자본과 난개발, 해군기지와 제2공항 문제까지 120쪽 잡지 전체를 제주 이야기로 채웠다. 일부 엉뚱한 내용이 있긴 했지만 대한민국 최대의 휴양지라는 수식어 너머 제주의 '이면'을 정리해놓았다. 제주섬의 고통은 '육지' 중앙정부와 대척점에 섰을 때 더 컸다. 국책사업이라는 명분으로, 대규모 외자 유치 등을 이유로 일방통행한 사례마다 '제주의 눈물'이 흐르지 않았나. 한철 거쳐가는 이들만이 아니라 이 섬에 오래도록 발딛고 살아온 사람들에게 제주가 치유의 땅이 돼야 하는 이유다. 메도루마 슌의 표현을 빌리자면, 제주에 살고 있는 사람은 이 현실에서 도망칠 곳이 없다. 고향으로 돌아와 제주도를 이끌고 있는 원희룡 지사가 지난 6월 임기 반환점을 도는 자리에서 전임 도정이 남긴 설거지를 끝내고 남은 기간 새로운 밥상을 차리도록 노력하겠다는 식의 말을 했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묵은 때가 닦인 그릇에 앞으로 어떤 음식이 놓일지 지켜봐야겠으나 성장 위주의 정책에 변화가 없는 한 밥상이 바뀌지 않을 것 같다. 제주관광의 질적 성장을 외치면서도 관광객 머릿수를 염두에 둔 제2공항 건설이 추진되는 모습을 보자. 관광객은 얼마간 지내다 제주를 떠나면 그만이지만 제주 사람들은 제2공항 문제가 낳은 생활 터전의 상실, 지가 상승, 소음 피해 등을 고스란히 떠안고 지내야 한다. 누군가는 4·3의 끔찍한 살육 현장을 건너온 제주 사람들을 맨정신으로 붙잡았던 '살암시믄 살아진다'는 주문을 걸어보라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긍정의 언어'로 현실을 견디기엔 지금, 여기 제주도민이 치러야 할 대가가 크다. <진선희 편집부장>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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