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무스름하게 익어가는 냇가 정금나무 열매 계절맞춰 옷바꿔 입은 숲속 식생 만나는 재미 수수하고 우아한 가을숲 따라 여유로운 걸음 비가 지나간 숲길에는 안개가 짙게 깔렸다. 아침까지 쏟아지던 굵은 빗방울은 이내 잦아들어 걷기에는 더 없이 좋았다. 숲 세상을 찾은 이들의 걸음에 힘이 실렸다. 아홉 번째 에코투어는 영실 입구 맞은편 18림반에서 시작해 색달천, 천아숲길, 창고천, 노로오름, 표고밭길, 어음천, 노꼬메 상잣길, 큰노꼬메 주차장을 지나는 여정이었다. 길잡이로 나선 이권성 제주트래킹연구소장은 "노로오름을 제외하면 대부분 평탄한 길이 이어지는 코스"라고 말했다. 영실 입구 건너편 18림반을 따라 걸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색달천 지류와 본류로 이어졌다. 냇가에선 정금나무 열매가 거무스름하게 익어갔다. 그 옆으로 산딸나무 열매도 붉게 익을 채비를 마쳤다. 가을의 길목에서 마주한 숲은 여름과는 또 다른 멋을 뽐냈다. 색달천에서 천아숲길로 이어지는 길에선 손가락만한 털사철란이 반겼다. 이맘때쯤 연한 갈색 꽃을 피우는 여러해살이풀이다. 몇 걸음 안 가 노린재동충하초도 눈에 들어왔다. 찬찬히 살피지 않았으면 그냥 지나쳤을 것들이다. 자연의 속도로 걸으니 숲은 비로소 제 모습을 내어준다. 9차 에코투어에서 만난 숲 속의 여러 식물들. 왼쪽부터 더덕꽃, 산딸나무 열매, 호장근, 조릿대. 강희만기자 노로오름으로 향하는 길에선 무릎 높이로 자란 조릿대가 사락사락 바지 자락에 스쳤다. 한 참가자는 그 소리가 "파도소리를 닮았다"고 했다. 더위가 한발 물러난 자리에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듯했다. 노로오름 정상에 섰다. 높이 1070m인 오름 전체가 울창한 자연림이다. 노로는 노루를 뜻하는 제주어로, 과거에 노루가 많이 살았던 데에서 이름 지어졌다. 이권성 소장은 "날씨가 좋은 날에 노로오름을 오르면 한라산과 어승생오름, 한대오름, 돌오름 등이 한눈에 들어온다"며 "조망이 좋은 곳인데 안개가 껴서 아쉽다"고 했다. 숲속엔 이미 가을빛이 내려앉았다. 노로오름 분화구에 서니 안개 낀 능선이 한눈에 들어왔다(맨 위). 색달천에서 잠시 휴식중인 탐방객들(가운데). 과거 표고를 재배했던 곳에는 당시 흔적이 남아있다(아래). 강희만기자 표고를 재배했던 길을 지나 어음천, 노꼬메 상잣길로 걸음을 옮겼다. 제주의 옛 목축문화를 보여주는 돌담인 상잣성이 오름 주변을 두르듯 이어졌다. 서어나무와 단풍나무, 산딸나무 등 469종의 식생이 분포한다는 노꼬메오름 둘레를 따라 걸으며 여정을 마무리했다. 에코투어 참가자들은 함께 발을 맞추며 제주의 가치를 발견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세 번째 에코투어에 참가했다는 황인택(62)씨는 "흔히 제주를 보물섬이라고 하지만 어디가 보물인 줄 모른다. 다른 이들에게 제주의 역사, 문화 등에 대해 설명할 수 있도록 평생교육원에서 오름해설과정을 들으며 에코투어에도 참가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오름을 다니면서 점점 몸이 건강해지는 것을 느꼈다"며 "걷기만 해도 치유가 되는 듯하다"고 말했다. 한편 오는 10일 진행되는 10차 에코투어는 사려니숲길 북쪽에서 시작해 천미천, 양하밭, 표고밭길, 삼다수숲길, 말찻오름, 숲길, 붉은오름을 거쳐 사려니숲길, 남조로로 나오는 코스다.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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