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레스트 등정을 기념한 시가퍼레이드에서 고상돈이 거리로 나온 제주도민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1977년 한국인 최초로 에베레스트 등정 기록 2년 뒤 북미 최고봉인 매킨리 하산하다 숨져 산악인 꿈 키워준 한라산 1100고지에 잠들어 고인 뜻 기릴 고상돈기념관 건립은 지지부진 "여기는 정상,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1977년 9월 15일 대한민국은 세계 8번째로 최고봉인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했다. 이날 산악인 고상돈이 한국인 최초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라 대한민국의 위상을 전세계에 알렸다. 그는 세계에서 에베레스트 정상에 56번째 등정한 사람이 됐다. 그의 에베레스트 등정을 시작으로 한국인들은 히말라야 곳곳에 발자취를 남겼다. 특히 대한민국에서 훌륭한 산악인이 배출될 수 있도록 큰 역할을 한 인물이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산악인 고 박영석 대장은 "태극기를 들고 에베레스트 정상에 우뚝 서 있는 고상돈의 모습이 들어간 학용품만 사용했다"며 어린시절 우상으로 꼽는 인물 중 하나였다. 그는 온 국민에게 '할 수 있다'는 꿈과 용기를 심어줬다.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를 오르는 고상돈 국민학교 5학년 때부터 보이스카우트 활동을 한 고상돈은 1964년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이원근 선생을 만나게 된다. 청주상고에서 보이스카우트를 담당한 이 선생은 충북산악회의 창립 멤버로 고상돈이 산악인으로 클 수 있도록 많은 영향을 끼쳤다. 고상돈은 국민학교 시절 구름에 뒤덮인 한라산을 보고 그 신비감에 사로잡혀 바라보다 정상에 오르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고 한다. 고상돈은 1967년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이 선생의 권유로 충북산악회에 정식으로 가입하면서 산악계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여놓는다. 속리산과 희양산, 조령산 등에서 당시 충북산악회 이사인 김수원, 남기문에게 산의 엄격함을 배우며 등반기술을 익혔다. 산악인 고상돈이 에베레스트 정상에 선 자신의 모습을 담은 조형물을 바라보고 있다. 1977년 9월 15일 새벽 5시 30분 고상돈은 캠프 5를 출발해 남봉을 지나 에베레스트를 오르고 또 올랐다. 어디가 정상인지 판단이 서지 않을만큼 산을 오른 고상돈은 눈 앞에 보이는 봉우리를 필사적으로 올랐다. 낮 12시 50분. 더 이상 오를 곳이 없자 두리번 거리며 정상을 찾던 고상돈은 "여기가 정상"이라는 펨바 노르부의 말에 한참이나 멍한 상태로 서 있었다고 한다. 함께 오른 펨바 노르부와 눈물의 기쁨을 나눈 고상돈은 "여기는 정상입니다"라며 무전을 남긴다. 그리고 세계 최고봉 정상에 태극기를 꽂았다. 야간 암벽훈련 ▷고상돈로와 건립 필요한 고상돈기념관=에베레스트 등정 이후 고상돈은 한국 최고의 영웅이 됐다. 교과서에서도 정상에 올라 태극기를 든 그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었고 기념우표, 주택복권 발행과 기념담배까지 출시될 정도였다. 1980년 한라산 1100고지에서 열린 기념비 제막식 또 고상돈이 주로 훈련했던 한라산 장구목에는 고상돈케른을 만들어 그를 기리고 있다. 2009년 고상돈 30주기를 맞아 그의 일대기를 담은 평전 '정상의 사나이 고상돈'을 출간했으며 국회 의원회관에서 '잊혀진 영웅 고상돈' 사진전과 세미나 등을 열기도 했다. 2005년 26주기 추모제와 동상 제막식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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