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산타할아버지가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주실까요?" 초등학교 4학년인 딸아이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자못 진지하게 묻는다. 뭐지? 이 질문은? 정신 바짝 차리자. 이때부터가 중요하다. 짧은 시간에 딸아이 질문의 요지를 파악해야 한다. 산타할아버지가 지금도 진정 있다고 믿는 것일까? 아니면 아빠가 선물을 준비해달라는 메시지인가? 섣불리 대답했다가는 동심을 깨뜨리는 속 좁은 아빠가 되거나 아이를 아이로 대하지 않는 냉정한 아빠가 된다. 2년 전 요맘때에는 산타의 존재 여부에 대해 물었었다. "아빠, 산타할아버지는 정말 없나요? 남자애들이 자꾸 없데요. 크리스마스 선물 갖다 주는 사람은 산타할아버지가 아니고 엄마나 아빠래요. 맞나요?" 그때 필자는 분명히 이렇게 대답한 것으로 기억한다. "얘야, 산타할아버지는 존재를 믿는 아이들에게만 선물을 주실 수 있단다. 없다고 믿으면 산타할아버지가 슬퍼하시지 않겠니? 그래서 더 이상 선물을 주시지 못하실 거야." 아이의 표정이 밝아진다. "저는 산타할아버지가 있다고 믿으니 선물을 주시겠네요? 그죠?" 이후 아이는 더 이상 고민을 하지 않았다. 딸아이를 보고 있자니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는 무엇을 믿는가? 우리의 믿음은 어디에 기초하는가? 일반적으로 종교에서 사용되는 믿음을 제외하고, 사회에서 통용되는 믿음이라는 단어는 신뢰의 또 다른 표현일 것이다. 그런데 가족, 친지 등의 1차 집단에서 생성되는 신뢰는 혈연에 기초하므로 학교, 회사 등의 2차 집단에서의 신뢰와는 구분된다. 1차 집단에서의 신뢰는 본능에 가깝다. 그러나 2차 집단에서의 신뢰는 이와는 다르다. 2차 집단에서의 신뢰판단은 앎에 기초한다. 앎은 정보량에 기초하므로 정보량과 신뢰판단은 밀접한 관계에 있다. 절대적 정보량이 부족하면 판단의 근거가 없어진다. 판단의 근거가 없어지면 신뢰가 생성되지 않는다. 그런데 더 안 좋은 경우는 한쪽에만 정보가 치우쳐 존재하는 경우이다. 이 경우는 정보량이 많은 쪽이 이를 활용하여 다른 한쪽을 바람직하지 않게 이용할 수 있다. 경영·경제학에서는 이를 '정보의 불균형'이라 명명하고 이것이 대리인 문제 등 해결할 수 없는, 인간의 이기심에서 발현되는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킨다고 얘기한다. 최근 우리사회에 드러나고 있는 여러 가지 바람직하지 못한 현상이 이 '정보의 불균형'에서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우리의 믿음이 객관적 정보에 근거하지 않고 '믿고 싶은 것'에 뿌리를 둔다면 정보의 불균형 문제를 이용하는 무리들은 늘어만 갈 것이다. 근본적으로 이를 완벽히 해결할 방법은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데, 이기심을 누르고 옳은 것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일 것이다. 우리가 속한 집단, 작게는 가정에서부터 회사, 지역사회, 지방자치단체, 국가에 이르기까지 의사결정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논의를 적절히 반영하여 최선의 합리적 방안을 도출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이제 필자도 딸아이에게 산타할아버지에 대한 바른 정보를 주어 정보의 불균형을 해소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그래서 산타할아버지는 5학년부터는 더 이상 오시지 않을 것이고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했다. 산타할아버지는 더 어린 친구들에게 가셔야 한다고 했다. 딸아이가 말했다. "그럼 아빠가 대신 선물 주시면 되겠네요." 그렇구나. 그러면 되는구나. 나는 이제까지 무얼 고민했던 것인가? 여러모로 힘들다. 제발 빨리 좀 가라, 丙申年이여. <오태형 부경대학교 국제통상학부 교수>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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