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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논단]화해의 조건
편집부 기자 hl@ihalla.com
입력 : 2017. 03.06. 00:00:00
2016년 어느 가을날의 일이다. 저녁 밥상 앞에 앉은 딸아이의 표정이 굳어있다. 퇴근하고 집으로 들어오면서 느껴졌던 무거운 분위기가 밥상머리로 이어진다. 가만히 고민을 우물거리던 딸아이가 묻는다. "아빠, 이 친구는 왜 이럴까요? 잘못을 하면 사과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래, 이제 대화를 해보자꾸나. "아무렴. 잘못을 했으면 사과를 해야지." 딸아이가 또 묻는다. "그런데 왜 사과를 하지 않을까요?" 내가 대답한다. "잘못을 하긴 했지만 사과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 아닐까?" 딸아이의 표정이 좋지 않다. "사과가 필요 없는 잘못이 있나요?" 이제 대답하기가 어려워지기 시작한다. 아, 또 시작이구나.

사과가 필요 없는 잘못이 존재하는가? 그럼. 있을 수 있다. 사과의 목적은 용서를 구하는 것이기에 굳이 용서가 필요 없는 사소한 잘못들은 사과가 필요 없겠지. 그렇다면 용서가 필요 없는 사소한 잘못은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사소한 잘못이란 그 크기가 작을 뿐더러 자주 발생할 수 있는, 일반적으로는 '의도하지 않은 경미한 잘못'을 의미할 것이다. 이런 사항까지 일일이 사과를 하고 용서를 해야 한다면 인간사가 참 힘들어질 테니까 말이다.

사과가 필요 없는 잘못이 존재하니 반드시 사과가 필요한 잘못도 존재하는 것이다. 어떤 잘못에는 반드시 사과가 필요한 것일까? 사소한 잘못에는 굳이 사과가 필요하지 않으니 중대한 잘못에는 반드시 사과가 필요하다 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중대한 잘못이란 잘못에 기인하여 만들어진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의 심도가 상당하여 주관적·객관적으로 그 상태를 용납하기 어려운 상황을 만들거나 이러한 상황을 의도한 행위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중대한 잘못을 하고도 사과를 하지 않고 화해를 요구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이렇게 화해를 외치는 자들을 관찰해 보면 재미있다. 그들 대부분은 가해자이거나 가해자이었던 사람들이다. 사과 없이 화해를 강요한다. 희한하다. 사과를 해야 용서를 할 마음이 생길 터인데 사과를 하지 않았으니 용서를 할 마음이 생기지 않는 것이며, 용서할 마음이 생기지 않으니 화해는 당연히 성립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화해를 강요한다. 사과 없이도 용서하는 것이 옳은 일이며 마음 넓은 사람이 하는 것이라 한다. 그게 미덕이라 한다.

사과가 없으니 잘못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으니 잘못하지 않은 것이라 한다. 결국 잘못한 사람은 없고 피해자만 있으며, 피해자는 잘못하지도 않은 사람과 화해한 셈이 된다. 잘못한 사람이 없으니 화해는 애초부터 성립하지 않는다. 우리가 화해라고 믿고 있었던 것은 화해가 아니라 스스로 망각을 강요하는, 의도된 기억단절이다. 사과가 선행되어야 용서가 되고 용서가 되어야 비로소 화해가 된다. 용서 없는 화해는 없기에 사과는 용서에 선행되어야 한다. 굳이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 일본 이야기를 꺼내지 않겠다. 굳이 우리의 현 정치상황 이야기를 꺼내지 않겠다.

딸아이에게 말했다. 만약 상대가 중대한 잘못을 했다면 사과 받고 용서하고 화해하는 것이 좋겠다. 사과 없이 그냥 용서해 줄 필요는 없다. 그것이 너의 의무는 아니니까. 그래도 상대를 이해하려고 노력을 할 필요는 있단다. 노력만 하면 된다. 그 노력이 너를 성장시킬 터이니.

<오태형 부경대학교 국제통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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