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 피었고 유채꽃은 흐드러졌다. 가장 찬란한 봄꽃 풍경을 자랑하는 4월이다. 그리고 다시 4·3이다. 제주섬을 핏빛으로 물들였던 그 참혹했던 시간도 어느새 69년이 흘렀다. 제주섬 사람들은 4·3에 대한 아픈 기억을 품고 산다. 힘겹게 꺼내지 않는 것 뿐일지 모른다. 개인적인 이야기 하나. 1991년 대학에 들어가기 전 '4·3 사건'에 대해 제대로 들어보지 못했다. 그리고 대학시절에서 어찌보면 '음지'에서 4·3을 배웠다. 그 참혹했던 역사의 모습과 마주하게 된 후 대학생활이 바뀌었다. 왜 감춰야 했는지, 왜 모른척 했는지 눈물짓고 거리에 서기도 했다. 그렇게 몇 해동안 학교 교문앞 벚꽃이 가장 흐드러지게 피는 4월이면 교문앞은 벚꽃과 최루탄 가루가 섞여 눈이 시리도록 아프게 했다. 개인적인 이야기 둘. 대학을 갓 졸업했던 1995년 어느날, 난생 처음 '신문사 기자직 공채 시험'을 보게 됐다. 시험과목은 국어·영어·상식·논문·작문 모두 다섯과목이었다. 시험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했던 탓에 많은 과목의 성적이 좋지 않았을 터였다. 그런데 논문 주제가 바로 '4·3'이었다. 4·3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4·3정신은 무엇인지 쓰라는 논제에 답안용 종이를 몇장 더 달라고 했던 것이 기억이 나고, 빼곡히 무언가를 적어서 냈던 것 같다. 그 후 최종면접에서 논설위원 한 분께서 말씀하셨다. "우리 신문사 논술시험 답안지 중 가장 길고, 아프고, 의미있는 글"이었다고. 그렇게 지금껏 그곳에서 글을 쓰면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답안을 써냈던 20여년 전 4·3과 지금의 4·3을 바라보는 시각은 그리 달라지지 않았다. 올해에도 '4·3 흔들기'는 이어졌다. 이미 오래전 대통령이 사과까지 했고 국가추념일이 됐지만 아직 '잠들지 않는 남도'도 마음대로 부를 수 없다. 제주섬 사람들은 2014년부터 '세월호 참사'로 '더 아픈 4월'을 맞아야 했다. 그 아픔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해원하고자 하는 행사가 '만우절'이었던 1일 이곳저곳에서 열렸다. 관덕정 마당에서는 1947년 제주 관덕정 3·1절 기념대회 발포사건과 2014년 전남 진도 해역 세월호 참사. 60년이 넘는 세월의 간격을 뛰어넘어 비통하게 숨진 이들을 위로하는 해원상생굿이 열렸다. 이날 세화포구에서는 벨롱장이 펼쳐졌다. '기억'을 테마로 '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 주제로 행사가 열렸다. 행사에 참여한 이들은 '노란 리본'을 상징하는 노란빛 옷을 입고 행사장을 찾았다. 이제 제주섬 사람들은 4·3과 세월호를 함께 이야기 한다. 잊고 싶지만 잊을 수 없는, 잊어서도 안되는 '제주4·3'. 그리고 더불어 아프지만 기억해야 할 '4·16'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있다.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이들의 숫자 '304명'을 떠올리면서 '4·3'을 떠올리는 것도 마찬가지다. 오랜 시간이 걸려 마지막 항해를 하고 뭍으로 올라온 세월호의 모습을 보면서 또다시 가슴을 치고 있는 이들도 그렇다. '찢겨진 세월호'를 보면서, 오열하는 유족들을 보면서 우리의 마음도 함께 찢어지고 있다. 제69주년 제주 4·3희생자 추념식이 오늘 4·3평화공원에서 열린다. 올해 추념식에서도 '잠들지 않는 남도'를 부를 수 없다. 지난해 '대통령 대신' 참석했던 총리는 올해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참석해 무슨 말을 남길까. 현직 대통령의 불명예 탄핵과 구속으로 '살아있는 역사'를 기록중인 대한민국의 새로운 대통령이 5월 9일 탄생한다. 국민은 4·3정신을 흔드는 이들로부터 중심을 잡는 대통령, 세월호에 대한 진상규명을 통해 '국민의 뜻'을 받아들이는 대통령을 기대하고 있다. 차기 대통령은 '잠들지 않는 남도'를 목놓아 함께 불러줄 수 있을까. <이현숙 서귀포지사장·제2사회부장>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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