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들이 속으로 삼켰을 질문 생생한 시어로 빚어 '서술형 평가를 망쳤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의 뜻을 서술하는 문제였는데/ '여러 사람이 힘을 합치면 불가능한 일도 이룰 수 있다'고 썼는데/ 부분 점수도 인정해주지 않았다./ 이의 제기를 했다./ 틀린 이유를 설명해 달라고 찾아갔는데/ 공부한 게 아니라고 했다.// 그래도 틀린 건 아니잖아요. 배운 것에 갇혀 있는 것보다 낫잖아요?/ 공부한 것에 너무 갇히지 말라고 하셨잖아요./ 이미 알려져 있는 생각의 틀, 상상의 틀을 뛰어넘으라면서요.' '백지장이 뭐지'란 시의 일부다. 누가 쓴 시일까. 입시라는 높은 산을 넘어야 하는 어느 아이가 시험을 망치고 쓴 시일까. 매일매일 학교와 집을 오가야 하는 10대 청소년이 쓴 시 같다. 아이가 쓴 시가 아니다. 교직에 몸담았던 제주 양영길 시인이 썼다. 창비 청소년 시선으로 묶인 양영길 시집 '궁금 바이러스'엔 열여섯 살 아이들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듯 청소년이 주체가 되는 시편이 하나둘 펼쳐진다. 교과서 시를 비트는 시를 써온 시인은 이번에 별생각 없어 보이는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켰다. 그 아이들은 훈계나 조언을 늘어놓으려는 어른들에게 바보 같은 '질문짓'을 멈추지 않는다. 어른들 눈엔 쓸데없이 궁금한 것이 많은 놈이지만 그 아이들은 세상 모든 사물에 말을 걸 준비가 되어있는 멋진 놈이다. 수록된 작품은 60편이 넘는다. 아이들이 쏟아내는 말을 따옴표로 인용해 옮겨놓은 것처럼 보이는 시편엔 아이들의 언어가 그대로 살아난다. ''개구리 올챙이 적 모른다'가 맞지. 그치?/ 그런데 올챙이도 개구리를 알 리가 없잖아./ '올챙이 개구리 적 모른다'도 맞잖아. 그치?//사실 엄마 심정, 나 잘 이해 안 돼./ 말을 하지 않고 참았다가는 그냥 폭발할 것 같아서/ "그래서 어쩌라고?" 한마디 했더니/ 엄마 속을 긁는다고 버럭 했잖아./ 나 급실망해서 아무 대답도 못 했어.// 엄마가 이야기하는 거/다 억지 같고 강요 같았어.//엄마, 나 아직은 올챙인가 봐.' ('그래서 어쩌라고' 중) 시인은 "천천히 한두 편 읽다가 문득 자기만의 생각에 빠지게 하는 시, 읽다가 자기도 비슷한 생각을 했던 기억을 더듬어보게 하는 시로 읽혔으면 하는 바람으로 엮었다"고 했다. 창비교육. 8500원.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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