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진 고시원에서 공부중인 취업준비생. 쪽방 고시원 월 40만~50만원 기약없는 수험생 생활 지속 취업난에 생존 갈수록 치열 미래에 대한 투자 부담 감수 지난 21일 낮 12시 공무원 시험 대비 학원 밀집지역인 서울 노량진 역 일대. 인근 ○○ 공무원 시험 학원 건물에서 트레이닝복 상·하의에 슬리퍼나 운동화를 착용한 남·여 학생들이 밖으로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오전 시간 한산했던 거리는 이윽고 20~30대의 청년들로 가득 메워진다. 잠시 뒤 일명 '뷔페식당'이라는 간판을 내건 식당 앞에 긴 줄이 만들어진다. 건물 지하 1층, 마치 구내 식당처럼 꾸며놓은 이 공간은 노량진에서 저렴한 비용으로 끼니를 해결하려는 수험생들이 찾는 곳이다. 한 끼 3000원으로 나름 다양한 반찬을 접할 수 있다. 한달에 20만원 정도면 매일 세끼를 해결한다. 노량진에는 주머니가 가벼운 공시생(공무원 시험 준비생)들을 위한 '컵밥' 노점상도 있다. '컵밥 거리'로 노량진의 명물이 된 지 오래다. 또 골목 골목에는 '1000원'이라고 써붙인 핫도그집, 커피집이 즐비하게 이어져 있다. 거리를 가득 메웠던 학생들은 짧은 점심시간 뒤 학원 수업이 시작되면서 건물 안으로 빨려들어가듯 사라진다. 고향을 떠나온 공시생들의 보금자리는 고시원이다. 한 평 남짓한 공간에 가구라고는 침대와 책상·책장 정도로 꾸며진 고시원 방에서 공시생들은 또다시 책을 펼친다. 고시원에서 소음을 내지 않는 것은 불문율이다. 옆방 사람과도 통성명 하지 않고, 곧잘 방주인이 바뀌어도 이유는 알지 못한다. 수험생들의 휴식공간이자 또다른 공부방이기도 한 노량진 고시원의 비용은 월 40만~50만원대. 노량진역에서 좀 떨어진 지역의 바깥으로 향하는 창문이 없는 방이 월 38만원 정도다. 노량진 학원 중 스타 강사의 수업에는 500여명이 한꺼번에 한 교실에서 수강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강좌는 새벽부터 자리잡기 전쟁이 벌어진다. 인터넷 시대인 요즘, 지방에서도 스타 강사의 강의를 인터넷으로 볼 수 있지만, 수험생들은 현장의 치열한 분위기와 긴장감을 느끼고자 일부러 노량진 생활을 택한다. 경제적·정신적·육체적 부담을 감수하면서도 노량진을 찾는 청년들이 줄지 않는 가장 큰 이유다. 학원비는 경찰공무원 시험 준비 학원의 경우 6개월 종합반 코스가 150만원, 8개월은 200만원 정도다. 학원들은 이 코스 스케줄대로 하면 합격한다는 마케팅 전략을 펼친다. 공시생들은 미래에 대한 투자라 생각하고 부담을 감수한다. 그러나 최근 들어 노량진에서의 '생존'은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 공무원 선발 인원은 줄고 경쟁률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1년 만에 합격해 떠나는 공시생조차 귀한 실정. 청년 취업난 속 오늘도 노량진에는 같은 꿈을 꾸는 이들이 하나 둘 늘어간다. 학원비, 고시원비, 식비만 한달 100만원 제주 '취준생' 노량진 몰려…할일 많다고 하지만 '막막' 경제적 이유로 중도 포기도…대부분 부모 등 경제적 지원 타 지자체 청년수당에 부러움…"주거공간이라도 해결됐으면" 노량진 청년들 속에는 제주 소재 대학 재학생과 졸업생들도 많다. 대부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이다. 제주의 청년들도 여느 '공시생'들과 마찬가지로 학원 수업과 자습으로 하루를 보내고 컵밥 또는 뷔페식당을 전전하며 합격의 그날을 기다린다. ▶한 과에서만 10명 공무원 도전=벌써 세번째 경찰공무원 시험에 도전하는 제주대학교 휴학생 김모(27)씨는 "우리 과에서만 열 명 정도 노량진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청년이 '공무원, 공무원' 한다는게 저도 잘못됐다고 생각은 한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것 같다"면서 "제주에서는 정말 취업이 어렵고, 눈높이를 낮추지 않으면 안되더라"고 말했다. 노량진 공시생들이 세끼를 해결하기 위해 쿠폰 또는 한달 결제로 이용하는 일명 '뷔페식당'의 내부 모습. 부미현기자 2015년부터 노량진 생활을 시작한 그는 경제적인 이유로 한 차례 제주로 돌아갔다가 지난해부터 재도전 중이다. 그의 고시원 책상에는 평소 무뚝뚝하기만한 아버지가 보낸 응원의 편지가 벽면에 붙어 있다. 편지에는 "건강하게 잘 지내니 고맙다. 항상 긍정적인 사고와 감사의 마음가짐으로 최선을 다하길 바란다"고 적혀있다. ▶명절도 노량진에서 보내는 수험생들=1년 넘게 노량진 생활을 하고 있는 또다른 제주대학교 휴학생 강모(24·여)씨가 이곳에 머무는 이유도 비슷하다. 강씨는 "제주도에 있는 대학생들은 정말 공무원 시험 준비를 많이 하는 것 같다. 저도 처음부터 다른 것을 하려고 찾아보지도 않았다. 할 일은 많다고 주변에서 얘기하지만 너무 막막하다. 노량진에서는 많은 학생들이 준비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자극을 받을 수 있고, 부모님께 부담을 드리는게 죄송해져서 더 내 자신을 추스리게 된다"고 말했다. 노량진 컵밥 거리 모습. 부미현기자 부모님은 장녀인 강씨의 도전을 묵묵히 응원해주고 있다. TV 뉴스에 힘든 수험생활을 견디지 못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건이 알려질 때면 딸의 안부를 챙기며 마음을 다독여준다. 강씨는 "작년 설과 추석, 올해 설 명절 때 모두 제주에 가지 못했다. 이번 6월에는 시험 결과와 상관없이 짐을 싸고 내려가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경쟁=노량진은 합격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 오히려 제주와는 완전히 다른 환경 때문에 불면증을 겪다 중도 포기하는 이, 오롯이 혼자 이겨내야 하는 시간을 방황만하다 성과를 내지 못하는 이도 많다. 가장 큰 포기 사유는 경제적인 이유가 꼽힌다. 고시원비나 학원비, 식비, 용돈 등 다달이 들어가는 비용을 생각하면 빨리 합격해야 한다는 조바심은 이들에게는 매한가지다. 그런 만큼 최근 다른 지자체들이 취업준비생에게 지급하는 청년수당은 부럽기만한 일이다. 강씨는 "청년수당 같은 지원을 받게 되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현금 지원 방식이 아니더라도 거주 공간이 제공되는 지원이 있다면 부담을 줄이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하루 하루가 힘든 생활이지만 노량진에서 보낸 기간은 젊음의 특권이자 인생의 자산이 될 것이라고 이들은 믿는다. 김씨는 "아직 노량진을 떠나지는 못했지만 나중에 돌아봤을 때 한단계 더 저를 성숙하게 만들어준 곳으로 기억될 것 같다. 이 치열하고 삭막한 공간에 저도 함께 했다는 사실에 뿌듯함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강 씨는 "노량진에서의 삶은 제 인생의 가장 힘들었던 시기 중의 하나가 될 것 같다"며 "나중에 살면서 슬럼프가 왔을 때 이 시기를 생각해보면 힘이 나지 않을까 하며 위안으로 삼는다"고 미소지었다. 서울=부미현기자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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