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내 치매 유병률 12.1%…노인 10명 중 1명이 고통
고령화 빨라지며 급증세…요양원 등 대책 마련 절실


2013년 불현듯 예기치 않은 일이 찾아왔다. 어머니의 치매 진단이었다. 기억은 서서히 흐려졌고, 목적 없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일이 잦아졌다. 오영선(51·가명)씨가 남동생 대신 어머니를 모시게 된 것도 그때부터다.

누군가는 늘 어머니 곁을 지켜야 했다. 치매라는 병이 온 가족에게 짐을 안겨준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남동생에 여동생, 조카들까지 모두가 그 무게를 나눠 가져야 했다. 오씨의 건강이 나빠지자 부담은 더 커졌다. 결국 요양병원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집에서 어머니를 모실 때는 가족 전체가 함께해야 했어요. 약을 드리는 것도 역할을 나누며 돌아갔죠. 가족들도 어떻게 어머니를 돌봐야 하는지 몰라 어려움이 더 컸어요. 답답한 마음에 인터넷을 찾아보고는 했죠."

또 다른 치매 환자 가족인 김선희(가명)씨는 "지난해 12월 시어머니가 치매에 걸린 사실을 알게 됐다"고 했다. 제주시내 한 병원에서 치매 진단을 받고서였다. 이제 막 증상이 시작됐거니 생각했지만 치매 초기를 넘어 중기라는 진단이 내려졌다. "떨어져 살다 보니 치매 증상을 일찍 느끼지 못했던 거예요. '나이가 들면 깜빡 깜빡할 수 있지' 정도로 넘어갔던 거죠. 보호자 입장에선 초기에 발견하지 못한 거에 대한 죄책감이 들 수밖에 없어요."

지난 24일 제주보건소에서 열린 치매가족교실 '헤아림'에는 이들을 포함해 6명이 둘러앉았다. 헤아림은 치매 환자의 가족을 지지하기 위한 교육 프로그램이다.

참가자들은 지난 10일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고 있다. 치매를 올바르게 바라보기 위해서다. 이들은 치매 환자를 이해하고 돌봄 과정에서 겪는 문제를 헤쳐 나가는 법을 배우게 된다. 이 안에선 그간의 고민과 걱정이 더 이상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고 걱정과 어려움을 나누는 데 마음을 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이 겪는 짐의 무게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치매 환자와 그 가족이 기댈 곳은 여전히 좁고, 치매를 대하는 사회 인식은 여전히 부정적이다. 치매는 개인의 질병을 넘어 사회 전반에 부담 요인으로 작용한다.

▶장수의 섬, 제주는 축복?= 고령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치매에 대한 불안은 더 커지고 있다. 특히 치매는 '장수의 섬' 제주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중앙치매센터에 따르면 올해 기준 제주지역 치매 유병률은 12.1%로 추정된다. 전국에서 가장 높은 수치다. 도내 치매 노인 수는 1만888명(여성 76.8%·남성 23.2%)으로 전체 노인(9만419명, 지난 4월 기준) 10명 중 1명 이상이 치매를 앓고 있다.

높은 치매 유병률은 제주의 고령화, 장수 인구 비중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도내 치매환자를 연령별로 보면 2015년 기준 전체(9541명)의 45.4%(4330명)가 85세 이상이었다. 전국 치매 환자의 85세 이상 비율이 38.4%데 반해 상대적으로 나이가 더 많은 노인 환자의 비중이 높게 나타났다.

나이가 들수록 치매 유병률이 커진다는 것은 통계로도 짐작할 수 있다. 2015년 전국 치매환자 중 65~69세는 7.1%였지만 85세 이상은 38.4%에 달했다. 65세 이상 노인의 10명 중 1명이 치매에 걸린다면 85세 이상에선 3명 중 1명이 치매를 앓을 수 있다는 것이다.



"경제·정신적 고통 극심… 함께 나눠야"

도내 보건소 1곳만 치매가족교실 운영
'등급 외 경증 환자' 지원 서비스 미미

부정적 인식에 조기 검진·관리 어려워

제주 노인 인구 비율이 20.4%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8년 뒤에는 상황이 더 심각해진다. 2025년 도내 치매 환자는 지금보다 50% 늘어난 1만6366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같은 해 전국 치매 유병률이 10.15%로 예측되는 것과 달리 제주는 12.60%까지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 치매 노인에 대한 사회 안전망 없이는 장수는 결코 축복이 될 수 없다.

치매를 효과적으로 예방·관리하기 위해선 모든 세대가 함께 치매를 이해하고 대비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 사진은 지난 20일 제주시민복지타운 광장에서 '동행, 치매를 넘어'를 주제로 열린 2017 치매극복 걷기대회. 강경민기자

▶돌봄 부담에 커지는 고통=치매 환자 가족이 우선 맞닥뜨리는 문제는 치매에 대한 이해 부족이다. 제주특별자치도 광역치매센터 김지애 교육팀장은 "치매는 질병으로 받아들여야 하는데, 일부는 치매 환자가 달라지는 모습을 자꾸 떼를 쓴다거나 성격이 변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다 보니 돌봄 과정에서도 애를 먹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치매 환자 가족을 위한 주기적인 교육 프로그램은 찾아보기 어렵다. 제주도 광역치매센터는 지난해 보건소의 치매가족교실을 지원하기 위해 강사 양성에 나섰지만 도내 보건소 6곳 중 제주보건소 1곳만이 관련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치매가족교실 참가자 오영선씨는 "가족들이 치매에 대해 잘 알지 못하다 보니 어머니의 인식이 빠른 속도로 안 좋아졌다"며 "치매 환자 가족들이 돌봄 지식을 얻고 서로의 경험을 공유할 수 있도록 교육 프로그램이 확대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치매 환자 가족들이 떠안는 경제적 부담도 만만치 않다. 특히 보건소나 병원에서 치매 진단을 받아도 요양등급을 받기 전까지는 사실상 복지서비스 '사각지대'에 놓인다. 치매 환자가 노인장기요양 1~5등급을 받으면 노인요양시설을 이용하거나 방문 요양 등의 서비스를 받을 때 본인 부담률이 15~20%로 낮아지지만 '등급 외 경증치매환자'는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다.

등급을 받더라도 요양병원을 이용하는 경우에는 부담을 피할 수 없다. 치매 환자 가족인 이수영(60·가명)씨는 "한 달에 어머니 병원비와 간병비에 130만원이 들어간다"며 "요양원을 이용하면 비용 부담은 반 이상 줄겠지만 몸이 안 좋을 때마다 직접 병원에 모셔간 뒤 돌봐야 한다. 사회생활을 하는 입장에선 돌봄 부담 때문에 비용을 더 내는 쪽을 택하게 된다"고 말했다.

치매는 한 가정의 고통에 그치지 않는다. 고령화와 맞물려 치매환자의 증가가 예견되는 상황에선 국가 차원의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해 문재인 정부는 '치매 국가책임제'를 약속했다. 주요 내용은 치매지원센터 확대, 치매책임병원 설립 등이다. 문 대통령은 이르면 다음달 초 업무지시 형태로 치매 국가책임제를 도입할 것으로 전해졌다.

▶조기 진단 중요… 인식 개선돼야=치매 환자와 가족들의 정신적·경제적 부담을 줄이려면 '조기 진단'이 필수적이다. 치매는 완치가 어려운 만큼 조기에 발견해 예방·관리하는 것만이 돌봄 비용과 시간을 줄일 수 있다. 보건복지부와 중앙치매센터가 펴낸 '치매 가이드북'을 보면 치매를 발견한 뒤 별다른 치료를 하지 않는 방치군은 발병 8년 뒤 치료군에 비해 돌봄 이용으로 월 96만원을 더 부담해야 하고, 돌봄 시간도 매일 4시간을 더 소요해야 한다.

하지만 치매를 조기에 발견하는 게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특히 치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조기 진단과 치료를 가로막기도 한다. 치매 고위험군인 노인 세대에겐 치매 예방을 위한 운동, 조기 검진 등이 중요하지만 여전히 치매를 부끄럽게 여겨 병을 키우기도 한다. 만 60세 이상이면 보건소에서 무료로 받을 수 있는 치매선별검사마저도 꺼리는 경우가 많다.

박경희 제주도 광역치매센터 사무국장은 "치매에 걸린 자체를 부정하고 약을 복용하지 않아 증상이 심해지는 사례도 있다"며 "이런 경우 가족들은 치매 환자와의 소통에 어려움을 겪기 때문에 더 힘들어 한다. 치매에 취약한 고령층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부에선 치매 검진을 국가건강검진에 포함해 치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개선해 나가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제주보건소 치매가족교실에서 만난 또 다른 참가자는 "나이가 들어서도 치매 검진을 이상하게 생각하거나 거부감을 느낀다"며 "치매 진단이 건강검진의 하나로 포함된다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것"이라고 말했다.

치매를 단순히 노인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전 세대가 준비하고 예방해야 하는 질병으로 바라보는 것도 중요하다. 박 사무국장은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치매예방과 관리를 위한 인식 개선을 지속해 나갈 것"이라며 "이와 함께 주요 과제로 치매 경증 환자를 위한 학습지를 개발하고 치매안심마을 등을 운영하겠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강시영 선임기자, 김지은·송은범·양영전기자, 고령사회연구센터=고승한 박사, 이서연 전문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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