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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세상]"딱 너의 숨 만큼, 바다꽃밭이 주는 만큼…"
고희영 글·에바 알머슨 그림 '엄마는 해녀입니다'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입력 : 2017. 07.07. 00:00:00
엄마와 할머니 해녀 2대의 삶
작업 공간인 바다와 공생하는 제주해녀 공동체 가치에 주목

엄마는 할머니처럼 살기 싫었다. 바다가 지긋지긋했다.

엄마는 다신 돌아오지 않겠다 결심하고 바다 건너 도시로 나갔다. 도시에서 엄마는 미용사로 일했다. 매일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면서 엄마는 차츰 힘들어졌다. 서걱서걱 가위질 소리, 웽웽 드라이기 모터 소리, 쏴쏴 머리카락 헹구는 물소리에 어느 날부터 귀가 아팠다. 미용실 안의 모든 소리에 짜증이 났다.

엄마는 살고 싶어졌다. 결국 바다로 다시 왔다. 파도 소리를 듣자 귓병이 거짓말처럼 나았다. 엄마는 할머니처럼 해녀가 됐다.

우도 해녀들의 삶을 담아낸 다큐멘터리 '물숨'을 만들었던 제주출신 고희영 감독. 그가 처음으로 발표한 동화 역시 해녀를 소재로 했다. '엄마는 해녀입니다'로 자그만 딸의 시선으로 해녀인 엄마와 할머니를 그려냈다.

이 작품엔 맨 몸으로 깊은 바다에 뛰어들어 목숨을 내놓은 채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져온 제주해녀의 고단함이 배어있다. 한때 바다를 떠났던 주인공 엄마의 모습은 해녀가 제주바다의 낭만을 더해주는 존재가 아니란 걸 우회적으로 드러낸다.

육체적 고통 속에도 옛 방식대로 바다와 한 몸이 되어 살아가는 제주해녀 공동체는 '엄마는 해녀입니다'가 강조하는 대목이다. 바다밭을 저마다의 꽃밭처럼 가꾸는 해녀들은 그 꽃밭에서 자기 숨만큼 머물면서 바다가 주는 만큼만 가져오자는 약속을 저버리지 않은 채 오늘도 물질을 하고 있다. 엄마의 딸이 훗날 해녀가 되면 그 바다밭을 물려줄 수 있도록.

그림은 스페인 출신의 화가 에바 알머슨이 그렸다.

중국 상하이의 한 호텔에서 우연히 접어든 잡지를 통해 해녀를 알게된 그는 거기에 실린 강렬한 사진에 단박에 사로잡혔다. 하루빨리 제주로 가서 '해녀'라는 여인들을 만나야 겠다고 결심한 그는 2016년 5월 제주로 향한다. 고희영 감독과 인연을 맺은 뒤엔 우도에 머물며 해녀들을 만났다. 그는 인간이 가진 숭고한 가치가 꿋꿋하게 지켜지고 있는 점을 제주해녀를 통해 목격했다고 말한다.

에바 알머슨은 "가능한 한 정직하게 그리고자 노력했고 제가 그토록 존경하는 이 여인들이 최대한 빛날 수 있도록 애썼다"며 "이 대단한 세상을 아직 모르는 분들에게도 전해지길 기원한다"는 바람을 밝혔다.

그림동화 말미엔 방송 기자 출신 안현모씨가 번역을 맡은 영문이 실렸다. 난다. 1만3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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