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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세상]물에서 쓰는 시… 사랑 없이 어찌 바다에 들까
제주 허영선 시인 신작 시집 '해녀들'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입력 : 2017. 07.14. 00:00:00
이땅의 아픈 역사 헤쳐온 여인
해녀전마다 목메이는 사연들
우리 앞에 거대한 위로 건네

시인은 그들에게서 파도치는 생을 본다. 그들은 존재 자체로 우리 생의 묵은 상처를 치유해주고 있을지 모른다. 거친 파도에 몸을 던지는 순간 그들은 시가 된다. 그들은 물에서 시를 쓴다. 그들의 어머니의 어머니도 시였다. 물 안의 그들을 물 밖에서 만난 시인은 그들이 써내려가는 시를 받아 적는다.

'어려서 왼눈 잃은 바다새였네/ 열여섯에 검은 바다 건넜네/ 쓰시마 물질 그도 모자라/ 도쿄 한복판 일본 감옥소/ 서른 번 마흔 번도 모자라게/ 드나들었던, //끝내 흔들리지 않았네/ 흔들려도 흔들릴 뿐/ 무너지지 않았네// 외눈으로 세상을 닦았다네/ 외눈으로 폭풍 치는 바다 건넜네'('해녀 정병춘' 중에서)

제주 허영선 시인의 시집 '해녀들'. 시인은 깊디깊은 바다에 들었던 그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준다. 시로 적어나간 해녀전엔 이 땅의 아픈 역사를 살아낸 제주 여인들이 있다. 목을 메이게 하는 그들의 서사는 그 자체로 삶의 근원을 떠올리게 만든다.

해녀 김옥련. 1931년 6월부터 1932년 1월까지 일제 수탈에 맞서 싸운 제주해녀항쟁의 주모자로 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해녀 홍석낭. 나이 스물에 징용 물질로 일본에 간 그는 아흔 평생 물질하며 치바현에서 홀로 살고 있다. 북촌리 최고령 상군 잠수 해녀 현덕선, 하도리 선배 해녀 문경수, 해녀 강안자, 해녀 말선이, 해녀 박옥랑, 해녀 고인오, 해녀 김태매, 해녀 고태연, 해녀 장분다….

해녀들은 물에 목숨을 내놓은 채 한 시절을 건넜다. 제주에서 원산, 청진, 일본, 중국, 블라디보스토크 바다까지 누빈 그들이다. 4·3에 남편 잃고 살아남은 해녀들은 어떤가. '남자들이 모두 핏빛 바다로 떠난 그날 이후/ 북촌 여자들은 물질할 수 없으면/ 바다를 떠나야 했다'('북촌 해녀사').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언 물에 몸을 밀어넣고 온 힘 다해 버텼다. 그래서 맹골수도 물살에 몸 적셨던 '해녀 매옥이'는 마치 자신의 일처럼 '기다려라/ 아직 길 잃고 헤매는 아이들아'라고 물 밑의 여린 생명들을 깨운다. 매옥이는 세월호 아이들에게 말한다. '내가 엄마다// 울지 마라'.

시인은 시집 끝에 덧붙인 글에서 "왁왁한 물속 물밑에 내려가면 환하다지만 사랑의 깊이 없이 어떻게 깊은 바다에 들겠는가. 사랑을 품지 않고 어찌 물에 가겠는가. 어떤 절박함 없이 어찌 극한을 견디겠는가. 그러니까, 당신들은 삶이란 무엇인가를 말없는 물노동으로 보여주었다. 우리 앞에 거대한 위로를 건네주었다. 어쩌면 우리는 큰 빚을 지고 말았다"고 했다. 문학동네.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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