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제주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시절 서울 '장충체육관' 부정선거를 연상시키는 기가막힌 일이 벌어졌다. '장충체육관'부정선거는 박 전 대통령이 유신헌법을 만든후 지난 1972년 12월 23일 유신헌법에 따라 구성된 자신의 집권 연장용 조직체인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들을 서울시 장충체육관에 모아놓고 투표를 하게 만들어 99%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대통령이 된 사건이다. 국민여론을 무시하고 그들만의 잔치가 됐던 이 장충체육관 선거는 이후 한국정치사의 대표적인 부정선거로 기록됐다. 그 시절 이같은 부정선거가 가능했던 것은 군화발 탄압과 공작· 밀실정치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폐 청산을 외치고 있는 지금 제주에서 35년만에 이같은 일이 부활했다. 원희룡 제주지사와 신관홍 제주도의회 의장, 강창일·오영훈 국회의원은 지난 12일 의장실에서 비공개 간담회를 열고 제주도의회의원 선거구획정위원회가 도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마련한 '권고안'을 무시하고 선거구획정문제를 도민여론조사를 통해 결정키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제주도의원 정수를 현재 41명에서 43명으로 2명 늘리는 내용의 '제주특별법 개정 권고안'은 휴지조각으로 변해 버렸다. 도의원 선거구획정은 선거구를 분할해 대표자를 선출하는 기본단위를 정하는 것으로 선거구를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정당의 이해관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에 제주특별자치도 등 지방자치단체는 선거구 법정주의를 실현하고 이를 전담하기 위해 선거구획정 위원회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제주도는 지난해 12월 시민단체 2명, 법조계 2명, 언론계 2명, 학계 2명, 선관위 1명, 전직 도의원 1명· 전직 공무원 1명 등 각계 각층에서 추천한 전문가 11명으로 제주도의회의원 선거구획정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이후 선거구획정위원회는 도민 여론조사와 설문조사 및 공청회, 도내 각 정당과 관련 단체로부터 의견을 수렴하고 그 결과를 분석해 '특별법 개정 권고안'을 만들고 제주도에 제출했다. 하지만 국회의원들은 '갑의 지위'를 이용해 선거구획정위 여론조사 결과의 신뢰성을 문제삼아 마치 점령군이라도 된 듯 원 도정의 결정을 좌지우지하기 위해 다 만들어 놓은 판(권고안)을 뒤집어 버렸다. 현재 제주도의원 정수를 2명 늘리기 위해서는 동료 국회의원을 설득해야 한다. 이에 자신이 없어 아예 몸을 낮춰 버린 것이다. 이날 결정으로 원 지사는 선거구획정 위원회를 무용지물로 만든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자신이 위촉한 선거구획정위원회가 만든 권고안을 4자 회동에서 관철시키지 못한 점은 둘째로 치더라도 권고안을 만들어 제출한 선거구획정위원회에 이해조차 구하지 않았다. 제주도정이 선거구위원회의 결정을 존중해 주지 않으면 앞으로 어느 위원회가 도정을 믿고 일을 할 것인지 묻고 싶다. 신 의장의 행태도 지적을 받아 마땅할 것이다. 도민 여론조사와 설문조사를 앞두고 도의원들의 의견을 수렴했는데도 전체의원의 뜻을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동조해 버렸다. 이같은 밀실 회동 야합은 결국 비례대표 제주도의원을 축소하는 결과를 도출하게 됐다. 4자 밀실 회동후 제주도는 여론조사를 실시해 비례대표를 축소하자는 의견이 가장 높게 나옴에 따라 비례대표 도의원 비율을 축소하는 것으로 제주 특별법 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향후 제주 특별법 개정시 현재 도의원 정수는 41명으로 변동이 없지만 7명 비례대표 의원수는 5명으로 줄어들게 된다. 제주도내 진보정당을 비롯해 직능단체나 계층의 비례대표 진출기회를 줄여버린 이들 4자 밀실회동의 결과물은 35년만에 부활한 제주판 '장충체육관' 부정선거의 파생물로 제주정치사에 영원히 기록이 될 것이다. <고대로 행정사회부장>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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