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집마다 토종감이 있었을 무렵엔 저마다 감물을 들였다. 풋감을 따 큼지막한 그릇에 넣고 잘게 부숴 감즙을 낸 뒤 감물을 들여 햇빛에 말리는 과정을 거쳤다. 사진=서귀포시농업기술센터·제주민속촌 제공, 한라일보 DB 집집마다 토종감 달리던 그때…7~8월이면 감물들이기 분주 먼지 덜 타고 시원한 감촉의 갈옷…척박한 땅 일군 선인 지혜 오롯이 서귀포시농업기술센터·제주민속촌 감물들이기 체험으로 발길 유혹 제주사람들은 오래전부터 풋감을 따서 천연염색을 즐겼다. 그렇게 만들어진 천이 갈천이었다. 제주의 해풍, 햇빛, 공기, 물이 제주의 풋감과 어우러져 탄생한 빛이었다. 제주섬에서는 장마가 물러나면 감물염색을 하는 사람들은 손길이 바빠졌다. 감이 나는 제철인데다 햇볕을 쬐기 좋은 시절이라 예전부터 이 시기에 집중적으로 너나없이 감물 염색을 들였다. 이렇듯 제주의 천연염색은 '감물염색'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지난 9일 서귀포시 남원읍에 자리잡은 서귀포농업기술센터. 햇살은 뜨거웠지만 비가 한바탕 쏟아져서 그런지 잔디광장의 초록빛은 생동감이 넘쳤다. 돌담과 어우러진 감귤숲길을 따라 걸으니 또 한 번의 잔디광장이 펼쳐졌다. 그곳에 천연염색전시관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맘쯤 서귀포시농업기술센터에서는 천연염색을 주제로 축제가 펼쳐진다. 올해로 벌써 열여섯번째. 제주에서 탄생한 천연염색 작품들의 찬란한 빛의 향연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자리이다. 천연염색을 하는 이들은 하나같이 '제주의 감물염색'의 색상은 다른 지역의 그것과 다르다고 말한다. 탄닌이 더 많은 감의 성분때문인지, 제주의 바람때문인지, 맑은 공기와 강한 햇살 때문인지는 잘 모르지만 '더 아름답고 특별한 빛'이라고 한다. 천연염색 전문가는 "제주풋감은 탄닌 성분이 많아 감물을 내면 다른지역은 검은 빛이 나는데 제주도의 바닷물과 섞으면 황토색이 나온다. 똑같은 감으로 염색을 해도 색감이 화사하고 예쁘다"며 "제주만의 천연염료"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최근 경북 청도군, 전남 나주시 등에서 천연염색에 관심과 지원을 쏟는 것과 달리 제주는 제자리 걸음을 걷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제주의 특별한 감물염색에 대해 더 많은 전승·보존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번 행사는 도내 천연염색의 다양한 소재인 감물, 쪽물, 식물, 붓 등을 이용한 오프닝 감물 드로잉퍼포먼스가 펼쳐진다. 이어 감물·쪽 물들이기 체험, 파우치·가방 등 생활소품 만들기와 더불어 제주 천연염색에 새로운 기법으로 활용 할 수 있는 실크스크린 염색기술교육과 방염 기법 이용 제주 꽃 그리기 체험도 함께 이루어진다. 특히 천연염색 의류나 소품을 구매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놓치면 안될 이유가 있다. 천연염색 체험에 필요한 감물, 원단, 의류 등을 현장에서 판매하고 집에서 입던 색이 바랜 옷들도 재염해 입을 수 있는 코너도 운영된다. 천연염색 의류, 모자, 가방, 악세서리 등 300여 점을 20% 할인된 가격에 만날 수 있다. 서귀포농업기술센터 김수미 농촌자원담당은 "제주 전통문화를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다양하게 이용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제주만의 감귤염색을 오래도록 전승할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문의 760-7821~4. 강세움 학예사는 "제주 토종감의 특징과 감물들인 후 햇볕 아래 서서히 갈색으로 변하여 갈천이 완성되는 염색 전 과정을 체험할 수 있다"며 "옛 선인들이 사용했던 염색도구를 직접 사용하여 물들인 감물 손수건을 기념으로 가져갈 수 있어 인기를 끌고 있다"고 말했다. 문의 787-4501. "제주의 바람과 햇살, 그리고 기다림… 자연의 빛 담는 거죠" 박인숙 서귀포시천연염색바느질회 회장 9일 서귀포시농업기술센터에서 만난 박인숙(64·사진) 서귀포시천연염색바느질회장은 감물염색과 쪽염색이 어우러진 천연염색 옷을 입고 환한 표정으로 기자를 맞았다. 박 회장은 회원공동 브랜드 '감따그네' 대표를 맡고 있기도 하다. '감따그네'는 제주어로 '감을 따서 염색한다'는 뜻을 지녔다. 판매장은 남원, 체험공방은 위미에 있다. 회원들의 손길이 가득한 천연염색전시관에는 의류 뿐 아니라 침구, 미술작품, 가구, 소품, 인형 등 상상이상의 작품들이 한자리에 모여져 있었다. 판매장에서는 회원 13명 모두가 주주이자 주인이다. 회원 스스로 자신의 작품을 팔아 소득을 얻는다. 회원들은 대부분 남원읍 지역에서 감귤농사를 지으면서 각자 매장에 나와 천연염색과 디자인을 해 제품을 만들어 판다. 이 모임은 서귀포시농업기술센터에서 2002년부터 시작됐다. 감귤농사가 끝난 뒤 농한기에 접어드는 여성농업인들을 위해 바느질·감물염색 등을 교육했는데 이들의 내공이 점차 쌓이면서 2009년 영농조합법인으로 출범했다. 박 회장은 지난 2002년 제주에 귀농후 우연히 교육을 받게 되면서 감물염색을 알게 되었고 지금은 그의 삶의 전부가 됐다. "어렵게 염색하고 맘에 드는 빛이 나오는 순간 느끼는 희열은 말로 표현할 수 없어요." 회원들은 감물 염색을 기본으로 쪽염색, 양파 염색 등 천연에서 나오는 걸 활용해 다양한 빛깔을 낸다. 이들의 작품은 서울 인사동에서도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박회장은 "천연염색은 오래걸리고 손이 많이 가기 때문에 고가에 팔리는 것은 이해하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천연염색제품을 부담없이 가질 수 있도록 가능한 저렴하게 판매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토종감 수요가 점점 늘어나는데 감나무가 점차 사라지는 것도 걱정이다. 전승이 제대로 되기 위해서는 이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박 회장은 마지막으로 "농업기술센터의 든든한 지원이 없었다면 지금은 없었을 것"이라며 "평범한 여성농민들의 자존감을 높여준 천연염색에 대한 애정을 간직하겠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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