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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해녀 밥상을 탐하다] (10)부산 영도구 해녀음식
'꽃'이 되어 김밥에 앉은 성게알이 특별해졌다
바닷가 좌판에 풀어놓은 해산물에는 향수가 가득
이현숙 기자 hslee@ihalla.com
입력 : 2017. 11.27. 20:00:00

영도해안가에 깔린 좌판 모습. 강동민 기자

싱싱한 해산물에 따로 시켜 같이 먹는 성게김밥 인기
고향 떠난 출향해녀 그리움 제주메밀 음식으로 달래
전기·수도시설 부족, 연안정비공사 등 영업환경 열악


기장군을 제외하고 부산에서 가장 많은 해녀가 살고 있는 곳은 영도구다. 2016년말 기준 해녀수를 살펴보면 기장군이 627명으로 가장 많고 영도구 151명, 해운대 84명, 사하 34명, 서구 23명, 남구 19명, 수영 14명, 강서 1명 순이다.

영도구 해녀들은 남항동어촌계(58명)와 동삼동어촌계(93명)로 나뉜다. 이들은 날씨만 좋으면 새벽 6시 30분쯤 물질에 나가 4시간 가량 작업을 하고 채취한 해산물을 좌판에서 판매하고 있다. 일부는 자갈치시장이나 식당으로 판매하기도 한다. 대부분 제주가 고향인 이들이다. 해녀촌에서는 제주어로 소통하는 것이 더 쉽다. "제주에서 왔수다"라는 말 한마디로 '해녀삼춘'들의 장벽은 무장해제되고 만다. 바로 고향과 친인척의 이야기 몇마디면 '어느집 누구'라는 네트워크가 형성된다. 해안풍경이 다를 뿐 제주해녀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따로 또 같이' 해녀 공동체=영도의 옛 이름은 '절영도'였다고 한다.

좌판에서 해녀가 바로 썰어준 신선한 해산물.

끊어질 절(絶), 그림자 영(影)을 썼는데, 나중에 '절'자가 떨어져 나갔다는 것. 신라 때부터 조선 중기까지 영도에는 나라에서 직접 관장하는 말 방목장이 있었다고 한다. 그 이름을 따서 영도 안에 절영해안산책로가 조성됐다. 영도의 해안 절경을 꿰고 가는 길로 남항대교 인근에서 중리해변까지 그 길이가 3㎞쯤 된다. 해안절벽 위는 흰여울문화마을이다. 6·25전쟁 중에 피란민들이 주로 살던 동네다. 산책로가 끝나는 중리마을에는 해녀들이 많다. 중리해녀들도 조업·판매 구역이 나뉘어져 있다. '봉래동'과 '청학동'으로 사는 곳에 따라 양쪽으로 해산물 판매구역이 구분된다. 서로 다른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는 듯 하지만 함께 힘을 모아야 하는 부분은 공동대응에 나서기도 한다. 최근 공사로 어려움을 겪는 해녀들은 함께 뜻을 모으고 있다.

판매지역은 나뉘어 졌지만 이들이 판매하는 품목은 동일하다. 갓 잡아올린 해산물이다. 조리시설을 갖추지 못했기에 '음식'을 팔고 내어줄 수 없다. 그것이 늘 아쉽다. 해녀들이 몸을 따뜻하게 데울 곳도 마땅치 않다. 그래서 이들은 제주의 해녀들이 부러움의 대상이다.



▶영도 해녀촌 별미 성게김밥=영도구 동삼동 중리 해녀촌은 해녀들이 직접 채취한 신선한 해산물을 파는 곳으로 입소문을 타며 지역 명물로 자리잡았다.

김밥에 성게를 얹어 먹는 성게김밥.

제주도처럼 '해녀의 집'이 마련된 것이 아니어서 해산물을 조리하는 대신 좌판에서 신선한 해산물을 썰어 해산물 모듬으로 내어주고 있다. 손님상에 올려지는 해산물은 계절마다 차이가 있지만 보통 멍게, 해삼, 소라, 낙지, 전복, 문어 등 다양하다.

요즘 해녀촌에서 시민과 관광객 입맛을 사로잡고 있는 음식은 바로 성게알을 얹어 먹는 '성게김밥'이다. 처음에는 성게가 들어간 김밥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아니다. 해녀들이 싸주는 김밥이 아니라 '따로 시켜 같이 먹는' 음식이다. 부산에서는 '앙장구'라고 불리는 말똥성게를 김밥에 얹어 먹으면 특별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예전 해녀들의 밥상에는 오르지 않았을 음식이지만 짭쪼름한 성게알을 얹은 김밥에서는 바다내음을 느낄 수 있다. 성게알을 꺼내는 작업은 손이 많이 간다. 반을 쪼개 숟가락으로 주황빛이 도는 알을 모아도 얼마 되지 않는다. 해산물의 짭잘한 맛을 김밥이 중화시켜 그 맛이 일품이다.



▶온 식구 함께 먹던 그리운 제주 음식=제주를 떠나온지 수십년이 흐른 해녀들이 그리워하는 음식은 무엇일까.

물질 준비를 하고 있는 해녀의 모습.

"우영팟에서 배추 뚝뚝 손으로 끊어 넣은 된장국에 밥 넣고 장아찌 하나 얹어 먹으면 그렇게 맛있었지. 오메기떡, 빙떡, 메밀수제비도 늘 그리워." 음식이야기가 나오자 할 말이 참 많은 듯 했다.

우도가 고향인 출향해녀 우경선(67)씨는 "소박했지만 온 가족이 함께 먹던 제주음식이 늘 그립다"고 말했다. 물질을 하고 나와서 뚝딱 차려 먹었던 평범한 낭푼밥상이지만 가족이 다 함께 둘러앉아 먹던 그 맛이 어떤 산해진미 부럽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들의 그리움이 맞닿은 곳에 늘 '밥상의 추억'이 있었다.

15살 때부터 물질을 시작했다는 김녕리 출신 김춘희(78) 해녀도 부산에 온지 40년이 지났지만 제주메밀의 맛을 잊지 못하고 있다. 그는 고향을 방문할 때면 늘 메밀을 사와서 메밀수제비, 메밀범벅 등을 해먹는다. 그는 메밀을 이용한 음식 중에서도 '소울푸드'로 메밀가루를 넣은 보말국을 꼽았다.

남편 직장을 따라 23살에 부산으로 건너왔다는 신양리 출신 고복화(82) 해녀도 그리운 제주음식으로 메밀국수를 꼽았다. 그녀 역시 "해녀였던 엄마가 물질을 끝내고 만들어 줬던 메밀국수의 맛을 잊을 수가 없다"며 타향에서 60년 가까이 살았지만 늘 생각이 나는 음식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제주출신 해녀들이 그립다고 한 음식에는 '국'도 있다. 호박잎국, 제주콩국, 돼지뼈국 등 뜨끈한 국물만큼 제주사람의 따뜻함이 그리웠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전기·수도시설 없는 열악한 해녀촌=현재 연안정비사업이 진행 중인 영도 해녀촌에는 전기·수도 시설이 없다. 이 때문에 물질을 하고 와서도 추위와 싸워야 한다. 해가 빨리 저무는 겨울에는 몇시간 정도밖에 좌판을 열 수 없다. 탈의장 시설도 없어 임시 콘테이너 안에서 옷을 갈아입어야 하고 얼어버린 손은 늘 빨갛다.

영도해녀촌은 현재 연안정비공사로 영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취재진이 해녀촌을 방문한 지난 21일에도 공사장 인근의 열악한 영업환경을 두고 시공업체 측과 해녀들 간의 언쟁이 오가기도 했다. 해녀들은 "공사장 안내판 등으로 해녀촌 판매 좌판 입구를 막아버려서 손님들이 해산물을 먹으러 왔다가 해녀촌이 철거된 줄 알고 돌아가기도 한다"며 "그런데도 시는 특별한 대책없이 공사만 진행하고 있어 막막하다"고 입을 모았다.

부산광역시의회는 지난해말 '부산시 나잠어업 종사자(해녀) 지원에 관한 조례안'을 제정해 안전사고 예방, 편의시설 설치, 체험활동 프로그램 개발, 교육과 교류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근거를 조례안에 담았지만 실제 지원은 여전히 미미한 실정이다.

30대에 고향 제주를 떠나 영도에 정착한 이금숙 남항동어촌계 해녀(나잠)회장은 "제주해녀문화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로 해녀에 대한 인식은 좋아졌지만 여건은 어렵다"며 "제대로 대접해 줄 게 없어 미안하다"며 아쉬워했다.

물질을 하러 들어가기 위해 준비하는 해녀들.



물질을 하러 들어가기 위해 준비하는 해녀들.



우도출신 우경선 해녀.



신양리 출신 고복화 해녀.



제주출신 해녀가 음식을 내어주고 있다.



<취재=이현숙·손정경 기자, 사진=강동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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