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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세상] '기도하는 노래시'로 거친 환경 견뎠다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입력 : 2017. 12.08. 00:00:00
한 시절 제주에 머물렀던 고은 시인은 이런 말을 했다. "제주는 노래의 땅이다. 노래 없이 그들의 자연과 사회, 그리고 노동을 이겨낼 수 없었던 것이다. 하루 종일이 아니라 석달 열흘을 불러도 아직 부를 노래는 많이 있는 것이다. 저 한라산이 닳고 닳아서 한 칸의 집이 될 때, 그 때에나 노래를 있는 대로 다 부르고 입을 다물 수 있을 것이다."

제주는 민요의 섬이다. 제주도무형문화재로 지정된 해녀노래, 방앗돌 굴리는 노래, 진사대소리, 귀리겉보리소리가 제주민요들이다. 그 노래들은 고된 노동으로 육체를 짓누르는 고통을 잠시 잊게 해줬다. 제주민요의 노랫말엔 민중들의 언어가 오롯하다. 제주섬의 오래된 생활풍속을 들여다볼 수 있는 귀한 자료다.

이같은 제주민요를 제주학의 눈으로 살펴본 책이 나왔다. 제주의 양영자 박사가 제주학연구센터 제주학총서로 펴낸 '제주학으로서 제주민요'다.

"민요는 삶의 현장을 기억하고 즐기려는 사람들의 강렬한 표현 욕구를 반영한 문학이면서, 동시에 사회구조와 이치를 순조롭게 만들기 위한 민속 도구라는 점에서 공동체 문화의 꽃이라 할 만하다."

양 박사는 그 중 가장 빼어난 꽃은 노동요라고 했다. 전도적으로 노동요가 고르게 분포해 전승되어 왔고 노동의 기능과 특질이 잘 드러난다.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밭농사 문화의 발달에 힘입어 생겨난 '밧가는 소리', '따비질 소리', '흑벙에부수는소리', '밧볼리는소리', '검질매는소리' 등이 있다. 바다밭을 일구며 살아온 제주여성들에 의해 전승된 '물질소리'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제주민요가 공동체 사회의 철학과 삶의 방식을 반영한 민속예술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고 봤다. 노동과 놀이를 통합하는 미적 양식도 품었다. 자연의 악조건을 견뎌야 하는 탓에 제의적 구술상관물로서 '노래로 하는 기도', '기도하는 노래시'의 면모도 지닌다. '검질매는소리'의 존재양상과 의미, '해녀노래'에 대한 고찰, '시집살이노래'의 특징과 의미, '맷돌방아노래'의 비유적 표현과 의미, 제주도 세시풍속과 전승민요 등을 통해 그 점을 들여다봤다.

저자는 "제주민요는 문자를 뛰어넘어 제주사람들의 정체성이 녹아있는 민속지"라며 "소리꾼들은 뛰어난 미적 감수성으로 제주사회를 노래한 구비시인"이라고 덧붙였다. 민속원. 3만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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