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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세상] '독한 가시' 키우겠다는 부끄러움의 노래
제주 김광렬 시인 새 시집 '내일은 무지개'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입력 : 2017. 12.15. 00:00:00
"이 세상 바꾸는 일이 말처럼 쉬운 일인가." 이런 생각으로 목청을 낮추고 절망의 심정을 안으로 삭인 날이 많았다. 역사의 수레바퀴 속 이름없는 이들의 목소리는 그저 땅아래 밟힐 것만 같아 앞길 헤쳐가며 살기 바빴다. 그런데 얼마전 우린 그런 세상이 바뀌는 현장을 목격했다.

'광장의 촛불을 품고 다른 세상이 열렸다/ 창백한 시대가 쇠사슬 끌며 사라졌다/ 이제 보기 싫은 얼굴 때문에/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지 않아도 된다/ 보기 싫다고 딸깍 채널을 돌리는 짓이/ 얼마나 가슴 미욱한 일인지 모른다'('채널 바꾸기'중에서).

시인이 자신을 더욱 엄격하게 돌아보게 만든 계기가 이 시대의 '촛불'이 아니었을까. '여전히 틈만 나면 쿵쾅거리며 심장을 치는 피톨들'처럼 달라진 세상은 그에게 끈질긴 물음을 던지고 있다.

시집의 첫 장, '나의 시'는 그의 시가 가닿으려는 지점을 그려낸다. '깊은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하는 환멸 덩어리// 어느 날 어느 누군가 툭, 내민// 달콤하고도 불량한 고깃덩어리// 천국과 지옥 사이를 흐르는 끈적끈적한 핏줄기'. 시인은 이런 시를 써오지 않았나 자책하며 섣불리 '무르익지 않겠다'고 말한다.

김광렬 시인의 새 시집 '내일은 무지개'다. 촛불부터 강정까지, 철공소 다니는 머리 긴 청년부터 수리공 중년부부까지 시인의 눈에 걸린 풍경은 신산하다. '언젠가는 사글세방과 결별하는 일'이 소망이라는 수리공 아내, 쓰레기 분리 작업장 임씨, 불법체류자인 듯 불안한 눈빛으로 공중전화 부스에 들러 짧은 통화를 하고 떠나는 청년들이 시인의 노래에 담긴다.

시인은 시집에서 몇 차례 부끄러움을 털어놓는다. 제주시청 앞에서 촛불을 켜들었을 때도 그 촛불이 '사람들의 찢긴 가슴'이라는 걸 알고 부끄러워 했다. 모든 게 당연하다고 여겼던 부끄러움이다.

그래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시인은 선언한다. '무르익지 않겠다/ 무르익는다는 것은 완성된다는 뜻/ 그래서 어디 온전한 곳에/ 화분처럼 곱다랗게 놓이거나/ 알 수 없는 곳으로/ 아주 사라진다는 뜻/ 차라리 나뭇가지 끝에서/ 가슴 설레며 한 천년 세월/ 독한 가시를 키우겠다'('무르익지 않겠다'중에서). 푸른사상.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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