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기획
[함께한 제주, 함께할 미래] 다시 지방분권을 말하다
시작은 미약… 진정한 '풀뿌리 민주주의' 원년의 해로
이상민 기자 hasm@ihalla.com
입력 : 2018. 01.01. 17:00:00

지난해 10월 제주 롯데시티호텔에서 열린 지방분권 개헌 결의대회.

11년 평가 냉혹… 행·재정 불이익 배제 원칙 못지켜
정부 분권수준도 초라… 道 "10% 자치에 불과" 고백
"연방제 수준 자치 가능하지만 자기결정권부터 보장을"

지자체마다 분권 논의가 한창이다. 정부는 100대 국정과제에 풀뿌리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자치분권'과 '재정분권'을 포함시켜 분권 논의에 불을 당겼다. 제주도민은 일찍이 분권을 경험했다. 제주도는 2006년 특별자치도를 출범시키며 지방분권 역사의 변곡점에 섰다. 새정부 들어 시작된 분권 논의는 다른 지자체 뿐만 아니라 제주에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도민들이 지금껏 경험한 제주의 분권은 기대이하란 평가가 많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듯 앞으로 그려질 분권의 모습은 지방자치의 새로운 발전 방향과 비전을 담아야 한다.

지난해 7월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국정과제 보고대회에서 인사말을 하는 문재인 대통령.

▶특별자치도 11년은 어땠나=지난 2007년 발간된 제주특별자치도 추진백서에는 제주가 행정체제를 개편할 때 지켜야 할 원칙 등이 나와 있다. 원칙은 ▷지역사회 통합·안정 최우선 ▷행·재정 불이익 배제 ▷주민자치 기능 강화 ▷행정구조 개편 로드맵에 따른 차질 없는 추진 ▷행정의 효율성 등 5가지로 구분됐다.

또 국회가 제시한 검토보고서에서는 "특별자치도가 출범해 광역자치체제로 개편되더라도 종전의 시·군 단위 지역의 주민자치 측면이 도외시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주문이 담겨 있다. 그렇다면 이 같은 원칙은 제대로 지켜졌을까. 강경식 제주도의회 의원은 지난 9월 도의회 주최로 열린 정책세미나에서 특별자치도의 5가지 원칙 중 행·재정 불이익 배제와 주민자치 기능 강화 원칙 등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고, 행정의 책임성은 후퇴했으며, 재정운영 성과는 미흡했다고 평가했다.

행·재정 불이익 배제의 원칙이 무너진 사례는 제주도 본청과 제주시, 서귀포시의 예산 배분 비율에서 확인할 수 있다. 2006년 당시 제주도 본청은 전체 예산의 41.8%를, 제주시는 33.5%, 서귀포시는 24.7%를 각각 가져갔지만, 2016년에는 예산 배분 비율이 제주도 본청 58.3%, 제주시 25.5%, 서귀포시 16.3%로 본청 쏠림 현상이 오히려 더 도드라졌다. 양 행정시가 특별자치도 출범 후 예산 배분에서 불이익을 받은 것이다.

주민자치 기능 강화 원칙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발견됐다. 특별자치도 출범 후 도 본청 공무원은 30% 가까이 늘어난 반면, 주민과 가장 밀접한 사무를 수행해야 할 읍·면·동 공무원의 증가율은 24%에 그쳤다. 이 밖에 시장의 잦은 교체는 행정의 책임성 약화를, 이월예산의 가파른 증가는 재정운영 성과에 대한 의문점을 불러 일으켰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제주특별자치도는 중앙정부와 지자체와의 관계 측면에선 일정 수준의 분권을 이룩한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제주사회 내부에서는 '제왕적 도지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중앙집권화하는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보였다는 평가가 있다.

제주도가 정부로부터 얻어낸 분권이 만족할만 수준이었냐는 질문에도 고개를 끄덕이기 힘들다. 제주도는 특별자치도 출범 후 5단계 제도개선을 추진하며 정부로부터 175건의 과제를 얻어 내지 못했다. 6단계 제도개선을 위한 제주특별법 개정이 현재 진행되고 있지만 정부 심의과정에서 이미 48건의 과제가 거절 당한 상태다. 불수용 과제의 면면을 살펴보면 행정분권, 재정분권 등 지방분권 분야가 65%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과제가 불수용 된 주된 이유는 타 지역과의 형평성 때문이거나, 효율성 저해 혹은 조세·규제·법률주의 침해 때문이었다. 제주도의 자체 평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제주도는 지난 7월 발표한 보도자료에서 지금의 자치 수준은 10%에 불과하다고 고백했다.

▶진정한 분권이 진정한 특별자치=제주특별자치도는 안에서의 실질적인 분권과 밖에서의 실질적인 분권을 모두 이뤄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밖에서의 분권에 대해선 제주 뿐만 아니라 다양한 집단에서 목소리를 낸다. 미국처럼 연방제 수준의 획기적인 분권을 이룩하자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것은 현 정부에 거는 지방분권에 대한 기대가 얼마나 큰 지를 보여준다. 제주도도 이 기회를 살리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제주가 원하는 지방분권의 방향이 공개돼 눈길을 끌었다.

제주도는 2020년까지 외교·국방 등 국가 존립 사무를 제외한 나머지 사무를 모두 넘겨 받아 중앙권한 이양률을 80~90% 수준으로 높여야 진정한 특별자치도를 이룩한다고 보고 있다.

또 제주도는 지금껏 넘겨받은 중앙권한 중 26%만 법적 특례(일반법과 상관 없이 지자체가 자체적으로 규정을 정할 수 있게 예외를 둔 것)를 부여 받았는데 앞으로 2020년까지 특례 인정 비율을 50%로 높여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제주도가 지난 11월말 행정안전부에 제출한 정부의 지방분권 로드맵에 대한 의견에는 좀 더 구체적인 분권의 모습이 담겼다. 제주도는 의견서에서 자치경찰단의 단속·수사 권한을 대폭 확대해 주거나 국가경찰이 관리하는 지구대 조직을 자치경찰에 넘겨줄 것과 앞서 선거구획정위원회와 제주도의회가 각각 권고안과 결의안에서 제시한 것처럼 제주도의원 정수를 조례로 조정할 수 있게 해달라고 정부에 요청한 상태다.

의견서에는 재정분권에 대한 내용도 포함돼있었다. 행정적 권한과 조직을 대폭 넘겨 받는다해도 그에 걸맞는 돈이 없으면 운용할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제주도는 법정외세 도입을 제시했다. 일본에서 시행하고 있는 법정외세는 지방자치단체가 조례로 정하는 세목(세금 항목)을 말한다.

지방소비세 배분 기준 조정도 제안됐다. 진정한 재정 분권을 위해선 현재 8대2 구조인 국세와 지방세 비중을 우선적으로 7대3 구조로 개선한 뒤 장기적으론 6대4 구조로 바꿔야 한다는 게 학계의 공통된 의견인 데, 이를 위해선 지방 소득세 확대가 현실적 대안이라는 게 제주도의 판단이다.

제주도 안에서의 분권 강화는 행정체제 개편 문제와 맞닿아 있다. 자치 분권을 위해 행정시장 직선제를 도입할 것인지, 읍면동장 직선제를 도입할 것인지 등 행정체제개편을 통한 자치 기능 강화 방안을 찾아내려면 우선적으로 제주도 스스로 논의를 주도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때 필요한 것이 자기결정권이다. 자기결정권은 자율적으로 행정체제를 바꿀 권한을 말한다.

올해 예산 심사 때도 도의원들은 "자기결정권부터 빨리 보장 받아야 기초자치단체 부활 등 행정체제개편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수 있다"고 주장했었다. 자기결정권부터 확보하려면 정부 차원의 지방분권, 개헌 논의와 상관 없이 제주특별법 일부 조항만 먼저 고치는 원포인트 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지방의회와 집행기관 구성의 특례를 두고 있는 제8조 조항을 우선 개정해 주민투표를 의무화하고 주민투표 실시 권한을 도지사에게 둬 지방의회와 집행기관 구성에 대한 포괄적 권한을 가져와야 한다는 것이다.
이 기사는 한라일보 인터넷 홈페이지(http://www.ihalla.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문의 메일 : webmaster@ihall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