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평화기념관 전시실 내부에 이름이 없는 ‘백비’가 원통형 기둥 아래 놓여 있다. 강경민기자 제주시 봉개동에 위치한 4·3평화기념관 내부. 제1관 ‘역사의 동굴’ 끝부분에 하얀 비석이 누워있다. 비석은 원통형 기둥을 통해 쏟아지는 햇빛을 받아 투명하게 빛난다. 그런데 길다란 비석의 표면엔 아무런 글자가 새겨져 있지 않다. 이른바 ‘백비’다. 백비는 어떤 까닭이 있어 이름을 새기지 못한 비석을 일컫는다. 이름도 없는 비석이기에 일으켜 세우지도 못한 채 그렇게 있다. 백비는 이름짓지 못한 4·3의 현주소를 응축해서 보여주는 상징물이다. 4·3은 아직까지도 올바른 역사적 이름을 얻지 못하고 있다. 정부 진상조사보고서가 채택되고 대통령 사과와 국가추념일로 지정됐음에도 불구하고 엄연한 현실이다. 일부 보수단체에서는 여전히 4·3을 공산폭동이라며 반발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인명피해의 대부분이 군경 등 토벌대의 무리한 진압 때문이었음은 부인 못할 사실이다. 제주4·3사건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는 2002년 처음으로 희생자 심사를 실시했다. 그후 2014년 5월 23일까지 희생자 1만4231명과 유족 5만9225명을 결정했다. 여러 자료와 인구 변동 등을 감안할 때 4·3사건 당시 인명피해는 2만5000~3만명으로 추정했다. 당시 제주도 인구의 10분의 1이 희생된 것이다. 특히 전체 희생자 가운데 10대 이하 어린이가 5.4%(770명), 61세 이상 노인이 6.3%(901명)였다. 여성은 21.1%(2990명)에 달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인 진압작전이 벌어졌음을 뜻한다. 이처럼 4·3은 엄청난 민간인 학살을 초래한 인권유린 사태다. “제주도민은 다 죽여도 좋다”고 공공연히 말 할 정도로 집단학살, 즉 제노사이드(genocide)에 해당한다. 제주를 넘어 한반도 역사에 있어서 제주4·3처럼 국가권력의 잘못으로 수많은 무고한 사람이 학살당한 사례는 없었다. 20세기 일어난 세계사적인 비극 가운데 하나로 꼽혔다. 일본 요미우리 신문은 1992년에 제주4·3을 20세기 세계 중요 100대 사건의 하나로 선정했다. '섬'라는 좁은 공간에서 수만 명의 민간인이 학살됐다는 점이 충격적이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처럼 엄청난 사건이 한국 내부에서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금기시되고 있는 점이 선정 이유였다. 박찬식 박사(제주학센터장)는 저서 『4·3과 제주역사』 책머리에 “4·3은 조선시대 이래 변방으로 취급되던 제주섬에 가해진 외적 폭력의 최종 결정판”이라고 했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는 제주 역사에서 4·3 직후는 모든 생명이 죽고 모든 희망이 망실된 이른바 ‘역사적 영년’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4·3의 제대로운 이름을 부여하지 못하는 것은 그만큼 갈 길이 멀다는 반증이다. 2003년 12월 발간한 정부 진상조사보고서 서문에서 당시 고건 국무총리는 이렇게 밝히고 있다. “이 진상조사보고서는 4·3특별법의 목적에 따라 사건의 진상규명과 희생자·유족들의 명예회복에 중점을 두어 작성됐으며, 4·3사건 전체에 대한 성격이나 역사적 평가를 내리지 않았습니다. 이는 후세 사가들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상보고서는 4·3사건의 정의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하지만 성격 규정은 이처럼 유보했다. 단지 제주4·3사건이라고 명명함으로써 지금까지 논란의 여지를 남겨놓았다. 4·3은 사건의 정의는 있으나 제대로운 사건의 이름은 아직까지 부여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진상보고서는 정부차원에서 최초로 4·3사건의 진상을 밝힌 중요한 역사적 의미가 있다. 그럼에도 한계도 분명 존재한다. 미완의 보고서인 것이다. 앞으로 추가진상조사 등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를 통해 4·3의 바른 이름, 즉 정명을 부여해 나가야 한다. <자문위원=문성윤 변호사, 박명림 연세대교수, 박찬식 제주학센터장, 양윤경 4·3유족회장/특별취재팀=이윤형 논설위원, 표성준 차장, 송은범 기자> 인터뷰 / 양윤경 4·3유족회장 “4·3 공산폭동 주장, 대응할 가치조차 없다” 올 70주년 의미·중요성 남달라 4·3문제 완전한 해결 관심 필요 양윤경 제주4·3희생자유족회장은 강한 유감을 나타내면서도 올해 70주년을 맞아 소모적 논쟁으로 비칠 것을 우려한 듯 도민이 현명한 판단에 맡기겠다는 말로 일축했다. 유족들은 올해 70주년을 맞는 의미가 각별할 수밖에 없다. 양 회장은 당시 한 살이 70살이 됐고, 열 살이 80살이 됐다며 이제 이분들의 앞날에 어떠한 삶이 얼마나 남았을까를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하다고 했다. 국가와 지방정부가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과거사 해결에 대한 의지를 보여야 하며, 이때를 놓치면 안되는 절대절명의 역사적 시간을 맞이하고 있다는 것이다. 양 회장은 4·3 70주년의 의미와 중요성을 이처럼 에둘러 표현했다. 올해 역점적으로 추진하고 해결해야 할 사업도 강조했다. 특별법 개정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미국의 책임을 묻기 위한 10만 명 서명 목표 조기달성과 국제연대도 활발히 해나갈 뜻을 밝혔다. 70주년 추념식이 다양하고 의미있는 내용을 최대한 담아내고, 유족 중심의 유족을 위한 추념식이 되도록 하는 것도 과제다. 그러면서 양 회장은 이제 남은 것은 정부와 정치권의 몫이라고 강조했다. 70년 전 제주 인구의 10%가 희생됐고, 그로 인해 고통의 시간을 버텨온 유족들의 입장에서 4·3 문제 해결을 헤아려 달라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국정 100대 과제에 4·3문제 해결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어서 기대하는 바가 매우 큽니다. 각 정당 대표도 지난 대선과정에서 4·3특별법 개정을 비롯 문제해결을 공약으로 제시했었습니다.” 양 회장은 정치권이 또다시 이런저런 이유로 미온적 태도를 보이는 것은 약속을 파기하는 것이라며, 거듭 4·3의 완전한 해결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호소했다. 특별취재팀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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