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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세상] 여수 밤바다의 낭만 너머 70년전 그날
여순사건 형상화한 김진수 첫 시집 '좌광우도'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입력 : 2018. 02.02. 00:00:00
'어머니 피가 붉어 내 피도 붉다// 해마다 낫을 가는 어머니의 길을 따라/ 뿌리 깊은 가시넝쿨 발목을 휘감는/ 망금산 해거름 참 억새 숲을 헤치면/ 흐려진 비문 하나 납작한 봉분을 지키고 섰다/ 반란이라고,/ 그 놈이, 다시 그 놈이/ 마을마다 개몽댕이질을 하고 다녔다고,/ 피투성이가 된 사람들 보고/ 이번엔 저 봐라! 빨갱이가 틀림없다고,'('헛 장' 중에서)

느닷없이 '빨갱이'가 되어버리는 현실, 낯설지 않다. 1948년 10월 19일의 일이다. 이승만 정부는 전라남도 여수에 주둔하고 있던 군인들에게 제주4·3사건의 무력진압을 명령했는데 '같은 민족을 죽일 수 없다'는 이유로 파병을 거부하며 총격전이 벌어졌다. 정부군의 대대적 진압과정에서 여수, 순천 등 지역주민들의 희생이 컸다.

여수 초도(草島)가 고향인 김진수(여수민예총 회장) 시인은 첫 시집 '좌광우도'에서 우리 시문학사에서 본격적으로 제기되지 못했던 여순사건의 진실을 형상화했다. 땅 아래 묻히고 가려진 그날의 기억이 좀체 세상 밖으로 드러나기 어려운 시절을 건너온 때문인지 시집의 앞 쪽을 채우고 있는 시들의 목소리는 거칠다.

'마을이 불타고 사람이 불타고/여수 앞바다가 온통 무고한 양민들의 피로 붉게 물들었'지만 '그 광란의 피바다를 덮으려 국가보안법을 급히 제정했다.' '여순반란사건'으로 칭해졌고 '아무리 태극기를 내걸고 만세 삼창을 외쳐대도/ 모스크바로 낙인찍힌 마을'('모스크바엔 모스크바역이 없다')일 뿐이다. 사건 발생 60주년을 맞아 시민사회단체와 여수시에서 희생자들의 매장지 근처에 작은 위령비라도 세워보려했지만 비문에 적힐 '학살'이란 단어를 '희생'으로 바꿔야 한다('나말이어라')는 주장에 진전을 못본 일도 있었다.

좌우 이념 다툼에 하릴없이 휩쓸려야 했던 이 땅의 사람들을 위무하며 시인은 '좌광우도'를 꺼내놓는다. '왼쪽으로 눈이 쏠려있으면 광어고 오른쪽으로 쏠려있으면 도다리'라는 뜻인데 '팽팽히 맞서서 보이는 것이 좌광 우도라면/ 서로의 어깨를 한번 다정히 감싸보자/ 그러면 금세 우광 좌도로 바뀌고 만다'고 분열로 분분한 우리 사회를 꼬집는다. 그러면서 시인은 나고자란 고향의 말을 끌어와 여수에서 그 어둠을 걷어내자고 말한다.

'사랑을 잃고 시를 잃고/ 꿈과 희망마저 까마득한 날이거든/ 얼릉 오이다!/ 여수로 오이다!/ 세상사 모든 설움 여기 와서 풀고 가이다'('얼릉 오이다' 중에서)

시인은 "우리 현대사의 가장 비극적 사건이며 서로 연결되어 있는 제주4·3과 국군 제14연대군사반란이 발발한지 올해로 70주년이 되는 해"라며 "졸편 '좌광우도'가 나와 내 가족 그리고 여수의 아픈 상처를 어루만지고 화해와 상생을 위한 뜨거운 불씨로 살아나길 간절히 소망한다"고 적었다. 실천문학사.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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