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열린 제16회 아오모리현 민요 그랑프리. 민요 실력을 겨루는 대회는 매년 아오모리 현내외에서 열린다. 일본 전역에서 사랑받는 쓰가루지역 민요 부르는 가수에 따라서 인상이 달라져 매력 쓰가루민요의 혁신에 앞장선 나리타 운치쿠 제주 한라일보사와 일본 아오모리현 토오일보사는 12번째 기사교류 주제로 '민속예능'을 삼고 각 사 지면을 통해 민요, 입춘굿 등 양 지역의 특색있는 문화를 소개한다. 양 사는 한 달간 논의를 거쳐 새로운 기사교류를 주제를 선정, 오는 4월부터 다시 연재해 나갈 예정이다. 일본은 각 지방마다 대중에 의해 불리던 민요가 있다. 내용도 농작업, 어업, 산에서 하는 일과 관련한 것부터 정령을 위로하기 위해 음력 7월15일 밤 남녀가 모여서 둥글게 돌아가며 춤을 추는 본오도리(盆踊り), 자장가, 축가까지 폭넓다. 사람들의 마음을 노래하는 민요는 시대가 지나도 변함없이 아껴주는 팬들이 있다. 그렇게 무수한 민요 중에서도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아오모리현이 위치한 쓰가루지역의 민요이다. 쓰가루 5대 민요 '존카라부시(じょんから節)', '오하라부시(おはら節)', '요사레부시(よされ節)', '아이야부시(あいや節)', '산사가리(三下り)'는 전국적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쓰가루민요는 왜 이토록 인기인 것일까. 1970년 제20회 민요민무전국대회에 찬조 출연한 쓰가루 민요의 아버지 나리타 운치쿠(成田 雲竹)의 모습. 아오모리 민요의 매력에 대해 이야기하는 일본민요협회 현연합위원회 위원장 모리카와 고사이(森川 弘彩)씨. 메이지시대(1866~1912) 손에 꼽을 정도였던 쓰가루민요는 현재 약 30곡에 달한다. 시대마다 혁신자가 나타나 쓰가루민요를 성장시켰기 때문이다. 제1의 인물은 나리타 운치쿠(成田 雲竹·1888~1974)라 할 수 있다. 쓰가루민요의 아버지로 불리는 그는 뛰어난 민요 가수였기도 했지만 그 대단함은 가창력 뿐만이 아니었다. 모리카와 씨는 "그전에 없었던 인트로(간주)를 노래에 도입해 선율에 쓰가루지역의 풍토를 더 강조했다. 인트로·멜로디를 확실한 형태로 구축해 새로운 쓰가루민요를 세상에 선보였다"며 "매우 뛰어난 프로듀서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적지 않은 전문가들이 '운치쿠가 쓰가루 민요의 새로운 형태를 확립해가는 과정에서 아오모리현 동부지역인 난부(南部)지방의 민요의 영향도 받았다'고 보고 있다. 민요가수로서 독립하기 전 운치쿠는 경찰관으로서 난부민요 문화가 활발한 난부초(南部町)에 부임한 적이 있다. '개인'인 예인(芸人)이 갈고 닦는 쓰가루민요와 비교해 난부민요는 춤과 함께 발전해 '공동체'가 지켜왔다. 운치쿠는 무엇보다 이러한 점에서 감명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민요의 굳건한 형태를 지키는 난부 사람들은 "이것이 난부민요"라는 확고한 자신감이 넘쳤기 때문. 그 영향으로 현재 불려지고 있는 '쓰가루산사가리(津輕三下り)'의 멜로디엔 운치쿠가 '난부우마카타산사가리(南部馬方三下り'로부터 영감을 얻은 리듬이 반영됐다. 쓰가루민요의 아버지 나리타 운치쿠. 그는 1952년에 발행된 '쓰가루민요다화(津輕民謠茶話)'에 민요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었다. "민요란 노래의 가사와 멜로디가 사람에게 스며들고 사람이 다시 노래에 녹아든 속에서, 자신의 목소리로 부르게 되는 것"이라고 말이다. 가토 모모코 기자 30대 민요 후계자의 등장 '새로운 바람' 33살 다카하시 노리요시씨 23년만에 전국대회 민요부 1위 민요를 앞으로 다음 세대에 어떻게 이어줄 것인가. 40대가 젊은층으로 불리는 아오모리현의 민요계의 큰 과제이다. 그런 가운데 민요계에 기쁜 소식이 들렸다. 지난해 일본민요협회 주최로 열린 전국대회에서 아오모리시의 다카하시 노리요시(33·高橋 律圭)씨가 아오모리현 대표로서 23년 만에 민요부 일본 1위를 차지한 것. 시대와 함께 변화하면서 이어져 온 쓰가루민요. 아오모리 시내에는 '린고차야'를 비롯해 민요를 들을 수 있는 음식점이 있으며 관광객들의 발길도 이어진다. 지난해 일본민요협회 주최로 열린 전국대회에서 23년만에 아오모리현 대표로서 민요부 1위를 차지한 다카하시 노리요시씨가 민요를 선보이고 있다. 이날 오후 7시 30분, 쓰가루 샤미센의 연주로 막을 연 스테이지에 드디어 다카하시 씨가 올랐다. 가락을 살려 감정을 가득 담은 '쓰가루존카라부시((津輕じょんがら節)'를 노래하니 어느새 가게 안에서는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사실 다카하시씨는 초·중·고등학생 때 축구만을 바라보며 외길을 걸어왔다. 그랬던 그가 민요의 길에 접어든 것은 22살 때. 주변인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민요를 접하기 쉬운 환경에서 자란 그는 친척인 '린고차야'의 여주인 하세가와 가쓰에(長谷川 勝枝)씨의 권유를 받아 민요를 시작하게 됐다. 다카하시씨는 처음 민요를 접했을 때 특별한 매력을 느끼지 못했지만 민요를 시작하면서 점점 빠져들게 된 케이스다. 그는 "새로운 세계였지만 해를 거듭할 수록 그 깊이를 통감했다"며 "옛 민요 가수의 음원을 듣고 목소리만 들어도 그 사람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 매일 매일을 살아가는 내 자신이 노래에 묻어나는 그런 민요 가수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가토 모모코 기자 가토 모모코 기자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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