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열 시인은 웅숭깊게 제주4·3을 들여다 본 작가다. 제주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의 성장은 길게 늘어진 4·3의 짙은 그림자와 함께했다. 때문에 소설 '순이삼촌'으로 4·3을 세상에 알린 현기영 소설가는 "김수열은 자신의 문학적 생애의 큰 부분을 4·3항쟁에 바쳐온 시인"이라고 말한다. "섬 토박이인 그는 그 섬이 겪은 항쟁의 기억을 자신 만의 언어, 그 질박한 그 섬의 언어로 표현한다. 그 섬의 무가처럼 혹은 민요처럼 그 땅의 언어로 노래하기 때문에 그의 시들은 우리에게 특별한 감동의 울림을 준다"고 했다. 1982년 '실천문학'을 통해 등단한 시인은 4·3 70년을 맞아 36년간 펴낸 시집 6권에서 47편의 '항쟁의 노래' 만을 가려 뽑아 4·3 시선집 '꽃 진 자리'로 엮었다. "이슬처럼 스러져간 그리운 얼굴들을 그대는 기억하는가"라며 시인은 "그날의 고운 섬과 차마 죽지 못해 오늘이 된 이름 없는 섬사람들에게 삼가 이 시집을 바친다"고 했다. 시인은 이 시집에서 '모두 죽고, 모두 불타고, 모두 빼앗겼던 4·3의 폐허'를, 불행한 역사의 그늘진 한 자리를 그 누구보다 찬찬하고 세밀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로써 비극의 역사가 자행한 비인간성과 잔악성을 적나라하게 폭로하고 4·3을 겪은 섬사람들의 한스러운 이야기를 생생하게 항쟁의 시어를 통해 전하고 있다. 또한 이 시선집에는 그간 시인이 구축한 언어적 특장이라 할 수 있는 제주어가 많다. 섬사람들의 구술을 고스란히 옮겨 놓은 듯한 시편은 역사적 사건의 사실성과 현장성을 배가시킨다. 시간을 달리하지만 아픔의 동질성 속에 피해자의 목소리를 고스란히 시어로 담아내는 작업이다. 제주출신이 아님에도 시집 '한라산'을 통해 4·3항쟁을 알린 이산하 시인. 그는 김수열 시인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살아남은 자가 '증인'이 되는 세상은 슬픈 세상이다. 시인이 증인이 되는 세상은 더 슬프다. 김수열 시인은 그 슬픔을 육지의 언어인 수직적 관점으로 보지 않고 제주 바다와 같은 수평적 관점으로 본다. 그의 말처럼 섬사람들은 섬의 언어로 울고 분노하고 하소연한다. 그런 언어로(중략) 4·3의 진실을 증언한다. 이 서럽도록 아프고 뛰어난 시집에 경의를 표하며, '살아 있는 섬에게 두 무릎을 꿇고 잔을 올린다'"라고. 걷는사람. 1만원.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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