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서울 영등포구치소에서 8개월을 살았다. 수배 현상금이 걸린 운동권 학생이었다. '내 빵 생활이야기'라는 부제가 달린 김홍모의 만화 '좁은 방'은 그곳에서 있었던 일들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푸른 밤, 포승줄에 몸이 꽁꽁 묶인 주인공 용민의 모습으로 책장이 열린다. 용민은 호송차를 타고 한강을 건너 영등포구치소에 도착한다. 거기서는 죄목에 따라 명찰 색이 달랐다. 사형수와 공안수는 빨간색, 일반수는 흰색, 조직폭력은 노란색이다. 용민은 빨간색 명찰을 달고 다섯 평 정도의 사각형 방에 아홉명이 지내야 하는 3상6방에 신입으로 들어간다. 전과 3범 이상의 살인, 강도, 강간, 조직폭력, 방화범이 지내는 방이었다. '좁은 방'은 당시 감옥 안에서 일어난 일들과 1990년대 대학가의 상황 등을 오가며 우리 사회가 조금씩 변하는 모습을 좇는다. 1990년대 학생운동은 1980년대의 그것처럼 영웅적 투쟁이나 정치인이 없었지만 그 역시 절박하고 처절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거나 끌려갔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은 좁은 방에서도 진실이었고 권력자들과 돈 많은 자본가들은 아무리 큰 죄를 지어도 금방 사면을 받았다. 대부분의 힘없는 사람들은 변호사를 마련할 돈도 없어 구속 생활을 해야 했다. 하지만 '좁은 방'은 마냥 무겁지는 않다. '태백산맥'과 '장길산' 전집을 갖고 있던 건달 상현이 형, 벗겨진 머리에 여기저기 칼자국이 있는 퇴물건달 소팔이형, 약을 많이 먹어 혀가 짧았던 앵벌이 대장 용식이 등 빵에서 만난 사람들이 품었던 따스한 성정을 전하고 있다. 밖에서는 범죄자였을지 모르나 좁은 방 안에서는 그들도 평범한 이웃이었다. 현재 제주에 살고 있는 지은이는 가장 치열하게 살았던 인생의 한 시절을 담아낸 '좁은 방'을 그리며 '지금의 나'를 생각했다고 말한다. 그 시절 선배·동료들의 죽음 앞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가란 자문이다. "그래도 그때 뜨겁게 살았던 기억이, 내 이익보다 더 큰 가치를 위해 모든 걸 걸고 살았던 그 순간들이 지금의 삶을 지탱해준다. 지금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끊임없이 묻게 해 준다." 보리. 1만5000원.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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