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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창우의 한라칼럼] 잡초에 대한 다른 생각
김현석 기자 hallasong@ihalla.com
입력 : 2018. 05.29. 00:00:00
요즘 푸름으로 산과 들은 현란하지만 다시 그들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나무와 풀과 새들과 모든 사물은 한 공간을 차지해 마주치는 시간에 맞춰 변하고 있는 것이 그들의 참모습이다. 돌담사이와 공터에 돋아난 왕모시와 산수국과 달개비와 서양등골나물과 여뀌, 바랭이, 천상쿨은 물론 땅을 기고 돌담을 오르며 나무를 휘감으며 오르는 칡넝쿨에 이르기까지 온갖 풀들이 자리를 완전히 잡아가고 있다. 이들은 너무 천천히 자라나면서 우리 눈으로 거의 알아볼 수 없으나 하루 이틀이 아닌 일주일 정도로 연장해 살펴보면 보이던 것을 보이지 않게 하기도 하고, 보이지 않던 것을 보이도록 하면서 산야를 뒤덮고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짙어가는 신록을 보면서 환호하고 자연을 만끽할 것이다. 허나 게으른 농부는 공포심을 느낀다. 농부가 키우지 않는 식물을 제외하면 모든 풀이 잡초이기에 이 잡초들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환경과 시간이 되면 싹을 올려서 줄기와 싹을 올리고 꽃을 피워 벌과 나비와 벌레들을 불러들여 오직 자신과 자신의 후손들의 번식을 위해서만 노력할 것이기에 그렇다. 식물들은 어쩌다 우연한 환경에서 공존이라는 용어가 통용되기는 하지만 이들은 자신들이 살아남기 위해 애쓰고 있는 것이다.

물론 찰스 다윈이 말했듯이 살아남기 위해 애쓰지만, 그러한 행위가 승리하지 않으면 패하는 전쟁의 의미가 아니라 생물 상호간의 의존성을 의미하는 지도 모른다. 그래도 농부에게는 도라지 밭에는 도라지만, 작약 밭에는 작약만 자라야지 하면서 자라난 잡초를 매고 돌아서면 다시 다른 풀이 돋아난다. 아무리 경비를 잘 서는 개라고 해도 풀들이 은근하게 돋아나는 것을 절대 알아채지 못한다. 잡초로 뒤덮여 애써 가꾼 땅이 다시 울창한 숲으로 돌아갈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마저 들 정도이다. 남의 밭을 빌어서 농사를 짓는 농부는 도라지와 작약 밭에 자라는 잡초만 없앨 수 있으면 그만이지 다른 식물과의 공존을 원하지 않는다. 재배하는 식물이 약초이고 보면 제초제와 같은 농약도 함부로 쓸 수 없는 노릇이고 보면 매일 잡초와 싸우느라 땀이 마를 날이 없다.

세상은 평화와 공존이라는 아주 거대한 물줄기를 타고 있는데 밭에 있는 농부는 싸움이라니 참으로 이기적인 일이라고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밭에 난 잡초를 매는 일은 농부에게 충실한 것이고 시간에 맞춰 올라오는 잡초 또한 그 자신에게 충실한 일이다. 농부는 가뭄이 들고, 비바람이 몰아쳐서 농사가 망치면 하늘과 자연을 원망한다. 잡초도 땅도 탓하지 않는다. 단지 힘들게 농사를 지었는데도 제값을 받지 못하면 그 때가서 위정자들을 탓한다.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는 어부도, 노동자도 농부와 같은 심정일 것이다.

그러나 요즘 정치판은 이들에 대한 정책이나 배려가 전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자신의 경험에 비춰 가치를 분별하지 못해 서로를 비방을 일삼고 있으니 참으로 부끄럽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말하지 않아도 알 사람은 다 안다. 그것이 민심이다. 지금은 다시 보지 않을 것 같이 얼굴을 붉히며 듣기에도 민망한 말을 내뱉어도 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친구요 형제요, 동창이며 선배며 후배로 이 공동체에서 서로 의지하며 자유며 평등이며 정의, 공정한 배분이라는 공동의 선을 위해 살아가야 할 운명이다. 잡초를 뽑아 멀리 던져버려도, 아무리 땅을 갈아엎어도 그 자리에선 다시 잡초가 돋아나는 게 진리다. 해가 구름에 가려도 비가 내려도 해는 있는 것처럼.

<송창우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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