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리 전경. 해상 화산폭발로 해일일며 사라진 마을 음력 2월 영등굿 준비 동네사람들 협심 한림항서 바라보는 석양 장관 '선유한수' 시간이 흘러 이 모래동산에 하나, 둘 집이 지어지고 살았다. '조물캐'라는 이름만이 어렴풋이 기억을 되새겨줄 뿐이다. 그러다 일제강점기에 한림항을 건설하기 위해 이 곳을 매립하던 중 모래에 파묻혔던 과거가 드러난다. 예전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과 유물이 발견된 것이다. 아쉽게도 제대로 된 발굴절차는 없었다. 유물들은 일본인들에 의해 도굴되다시피 했고, 동네사람들은 그릇 등의 유물을 봐도 재수가 없다고 깨버리곤 했다. 어쩌면 땅 속 어느 곳에는 아직도 고려시대 유물이 잠겨있을 지도 모른다. 마을 골목길. 마을 용천수. 하루방당. 할망당. 작은 마을이지만 없는 것 없이 오목조목 다 갖춰있는 한수리이고 보니 사람들이 빼곡히 모여 사는 충분한 이유가 될 만하다. 최근에는 젊은이들이 빠져나간 자리에 외국인 선원들이 들어와 메우고 있다. 앞으로 이들과 마을 내 공존을 위한 소통의 길을 잘 터가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 그동안 여러 역경을 지혜롭게 잘 헤쳐 나갔듯이 긍정적으로 발전할 것이라 믿는다. <여행작가> [인터뷰] 장석범 한수리장·함동윤 개발위원장 "마을화합위해 서로 돕고 있다" 우리 마을은 보릿고개가 없던 마을이다. 어렸을 때도 반지기 밥을 먹고 자랐다. 반농반어로 어머니들이 해녀를 하고 밭일을 하면 아버지들은 어선으로 수익을 올린 덕분이다. 앞선 이장님들의 성과를 이어받아 사업을 진행 중이다. 영등굿 축제를 마을축제로 승화시켜나가고 체험어장을 조성해 마을 수익사업으로 이어가고 있다. 테우 낚시 체험과 고망낚시 체험 등을 6월에서 9월까지 운영하는데 이를 어촌계와 협력해 좀 더 내실 있게 추진할 생각이다. 동네의 해녀가 22명이다. 이 분들이 비양도로 물질을 나갈 때면 개발위원장님과 내가 번갈아가며 뒷바라지를 한다. 이렇게 서로 돕는 것이 마을의 화합을 위한 길이다. 그래서인지 우리 마을은 마을회와 어촌계가 사이가 좋다. 일제강점기에 어뢰정을 숨겨놓았던 곳이 바닷가에 있다. 비록 어두운 역사지만 복원해 교육자원으로 이용해야 한다고 본다. 또한 우리 마을 리사무소가 한림읍에서 가장 오래됐다. 새로 지어 쾌적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겠다. "영등굿 복원해 축제처럼 진행" 우리 마을에는 농토가 없다보니 마을 직불제 보상 등을 받을 수 없어 마을 재산이 없었다. 마을회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종자돈이 필요한데 막막했다. 그래서 마을 사업을 추진하는데 총력을 기울였다. 행정의 도움으로 어촌지원센터를 지어서 임대 수익 등을 통해 자본을 만들었다. 이 수익금은 다시 노인회, 청년회, 부녀회, 어촌계 등과 나눠 마을 사업이 활성화 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노인회 지원에 힘썼다. 우리 마을의 정신인 경로효친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다. 그 외에도 영등굿을 복원했다. 어릴 적에 굿판에서 떡도 먹고 동전도 줍던 기억이 있는데 중단됐다. 4년 전부터 복원해 축제처럼 진행한다. 용천수 복원사업도 했다. 바다를 매립하고 대섬을 방파제로 이으며 용천수 일부가 매립돼버렸다. 하지만 3개는 보존해 지금은 노천욕 체험시설로 활용하고 있다. 방파제를 무조건 크게 지은다고 좋은게 아니다. 미래세대까지 자원을 남겨두기 위해서는 바다 자체의 정화기능을 되살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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