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에서 열린 제69주년 4·3희생자 추념식에서 한 유족이 4·3 행불인 표석을 찾아 참배하고 있다. 사진=한라일보DB "억울한 희생에 대한 실질적인 배·보상 있어야 진정한 의미의 과거사 청산 이야기 할 수 있어" 제주4·3은 특별법 제정과 진상조사보고서 확정 및 국가 공권력의 잘못 사과, 국가 추념행사로 완전 해결의 길을 걸어왔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과거사 청산은 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배·보상 등 그에 상응하는 적절한 조치가 이뤄져야 가능한 일이다. 지금까지는 4·3특별법 자체가 일종의 '인권법'에 그치면서 가장 중요한 '실질적인 명예회복'이나 '피해배상'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정부 차원의 추념행사가 봉행되는 마당에 이제는 배·보상 문제에 있어서도 실질적인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 이를 도외시한 채 4·3의 아픔을 치유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5·18 민주화운동이나 부마민주항쟁 관련 법률도 피해자와 유족 등에 대한 보상 규정을 두고 지원하고 있다. ▶70년이 지나도 아물지 않은 상처=제주4·3을 겪은 생존희생자와 그 유족들은 7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정신적·육체적 고통에 시달리며 삶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제일 중요하고 간과하지 말아야 될 문제는 희생자와 유족들 대부분 고령이라는 점이다. 이 때문에 이들이 생존해 있을 동안 하루 속히 현실적인 피해배상이 이뤄져야 한다. 제주도광역정신건강증진센터가 2015년 7월 14일 발표한 '제주 4·3생존희생자 및 유가족 정신건강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생존희생자 110명 가운데 39.1%가 심각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증상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중등도위험군은 41.8%(46명), 경도위험군은 16.4%(18명)였다. 해당 증상이 극히 미미한 안정군은 2.7%(3명)에 불과했다. 생존희생자 대다수가 4·3에 대한 공포감으로 그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고통을 느끼고 있고, 거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다는 얘기다. 4·3 당시 가족을 모두 잃고 제주를 벗어나 타 지역에서 살고 있는 이삼문씨가 지난 3월 30일 제주4·3연구소 주최로 열린 4·3증언본풀이 마당에 나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어 지난 3월 19일 발표된 부윤정 제주한라대학교 간호학과 교수의 '제주4·3생존희생자 삶의 질 실태와 개선 과제'에서도 제주도내 4·3 생존희생자 73명 중 72%가 만성 통증을 앓고 있고, 이 가운데 79.3%가 못 견딜 정도의 통증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중복응답을 한 만성질환의 경우 고혈압 67.1%, 고지혈증 27.4%, 관절염 24.7%, 당뇨 20.5%, 심장질환 20.5%, 치매 6.8% 등의 순으로 조사됐다. 치매에 걸렸거나 치매로 의심되는 생존희생자는 41.1%, 우울증을 겪는 생존희생자는 49.3%에 달했다. 이들의 평균 나이는 85.8살이다. 이에 대해 허영선 제주4·3연구소장은 "현재 4·3 후유장애를 겪고 있는 생존자는 69세에서 98세까지로 70년 동안 국가폭력으로 인한 고통을 겪었다"며 "돌아가시기 전에라도 생계비와 의료비 등 실질적인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부 교수의 발표에 참석했던 정수만 전 5·18유족회장도 "연로하신 분들에게 가장 중요한 부분이 의료비인데 그걸 왜 4·3평화재단에서 하고 있느냐"면서 "5·18의 경우 생존희생자들과 유족들이 모두 100% 국가에서 의료비 지원을 받고 있다"며 국가 차원의 의료비 지원이 실시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한계 보이는 특별법=현행 4·3특별법에는 위령사업이나 의료지원금 및 생활지원금에 대한 규정만 있을 뿐 희생자 및 유족에 대한 피해배상 방안은 미미한 상황이다. 더군다나 유족은 지원 대상에서 아예 배제됐다. 이에 제주도가 직접 나서 이들에 대한 지원을 하고 있다. 하지만 국가가 아닌 지자체 차원에서 이뤄지다 보니 지원 수준이나 범위 등에서 한계를 보이고 있다. 제주도는 '제주4·3사건 생존희생자 및 유족 생활보조지 지원 조례'를 제정해 생존희생자와 75세 이상 1세대 유족에게 매월 5만원씩 지원하고 있다. 또한 1954년 12월 31일 이전에 출생한 고령의 4·3 유족과 희생자 며느리(아들의 아내 한정)에게는 의료비를 지원하고 있다. 국비로 지원하는 유족 진료비는 외래진료 시 의료보험료 적용분 중 본인 부담금의 30%를 지원하고 있다. 며느리 진료비의 경우 제주도 자체 지침을 만들어 4·3평화재단에 위탁해 지방비로 지원하고 있다. 잘못된 국가공권력으로 인한 막대한 희생에 대한 배·보상은 시혜가 아니라 당연한 책임이자 의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국회에서 표류되고 있는 제주4·3특별법 개정안이 조속히 처리돼 피해자 배·보상문제가 하루빨리 해결돼야 할 것이다. 4·3 생존희생자와 유족들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자문위원=문성윤 변호사, 박명림 연세대교수, 박찬식 제주학센터장, 양윤경 4·3유족회장/특별취재팀=이윤형 선임기자, 표성준 차장, 송은범 기자> [기고 / 문성윤 변호사] "보상 아닌 배상… 방식은 정액제로 가야" 그러나 배상금 산정에 있어 곤란한 점이 있다. 5·18 민주화운동이나 부마민주항쟁 등의 입법안은 사망하거나 행방불명된 때를 기준으로 당시 월급액, 월 실수입액 또는 평균임금을 기초로 금액을 산출하고 있는데, 이와 같은 계산 방식은 4·3의 경우에는 현실적으로 적용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1949년 5월말을 기준으로 제주도의 농업인구는 21만4167명으로 인구대비 84.1%일 정도로 절대 다수였고, 여기에 어업과 축산업, 소규모의 상업 등에 종사하는 인구를 포함하게 되면 4·3 당시 도민 중 대부분은 일정한 급여를 받거나 정기적인 수입을 얻는 경우는 없었다고 봐야 한다. 아울러 당시 통화체계의 변동과 화폐단위의 변화로 인해 4·3 당시를 기준으로 배상금액을 산정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이에 따라 4·3의 경우에는 희생자 및 유족들에 대한 배상방식을 정액(定額)의 배상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4·3특별법은 배상금을 정액으로 지급하는 조항을 신설하고 구체적인 금액과 지급방법은 대통령령에 위임하는 방식으로 개정해야 한다고 본다. 이러한 정액방식의 배상금을 지급하는 경우에도 액수 및 지급방법 등에 대해 위임을 받은 대통령령에서는 피해자가 사망하거나 행방불명될 당시의 나이, 후유장애로 인한 노동력의 상실 정도, 수형인의 경우 형기에 따른 차이 등을 구별해야 될 것인지, 아니면 그러한 차이를 두지 않을 것인지를 논의해야 할 것이다. 4·3 당시 잘못 행사된 국가공권력에 의해 희생을 당하고 그 유족들 역시 폭도 가족이라는 누명 하에 수십 년의 세월을 살아오면서도 국가로부터 아직까지 한 푼의 배상조차 받지 못한 상황인 점을 감안해 배상문제가 시급하게 해결되기를 기대한다.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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