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의 '감자를 먹는 사람들'. 1885년 4월 쓰여진 편지에서 고흐는 이 그림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반드시 짙은 금색이나 구릿빛 액자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액자가 금빛에 가까워질 수록 생각지도 못한 부분이 밝아지고 어두운 색이나 검정 배경에서는 대리석처럼 보일 수도 있는 양상이 사라질 거라고 했다. 현재 고흐가 직접 만들고 색칠했던 액자 중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모과, 레몬, 배와 포도가 등장하는 정물화'를 보면 그림과 액자가 한 몸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림과 같은 노란 톤에 붓으로 연두색 격자무늬를 칠해놓은 것으로 이 액자가 아닌 다른 액자는 상상하기 어렵다. '발레리나를 가장 아름답게 그린 화가'라는 드가는 어떤가. 드가는 작품을 구입하는 이들에게 평소 신뢰하는 액자상의 가게에서 자신의 감독하에 액자를 맞춰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당시 관습대로 아카데믹한 스타일의 금색 액자로 표구하면 단번에 작품을 거둬들이고 대금을 돌려줬다. 파리1대학과 파리4대학에서 박물관학과 미술사학 석사 학위를 받은 미술사학자 이지은씨의 '액자'는 그림에 밀려 주목받지 못했던 사물인 액자를 들여다봤다. 미술 작품의 도판에만 익숙한 우리를 액자라는 길을 통해 더 풍부한 미술사로 안내한다.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았던 액자를 살피는 작업은 간단치 않았다. 그는 고흐의 액자를 이해하기 위해 기차를 타고 암스테르담으로 향하거나 드가와 만나려 콜렉터 가문의 보험 서류를 뒤적였다. 루브르 박물관의 문서실이나 오르세 미술관의 자료관 등에서도 긴 시간을 보냈다. 그에 따르면 우리가 잘 아는 화가들은 이미 액자의 존재를 보듬고 있었다. 같은 그림이더라도 어떤 모양의 액자에 담기느냐에 따라 빛깔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고흐는 그림이 완성되기 전에 상상의 액자를 수없이 묘사했고 루벤스는 갤러리 전체를 액자로 삼았다. 드가는 액자를 직접 스케치하며 제작자의 면모를 보여줬다. 저자는 "액자는 그림을 둘러싼 환경이 변화할 때마다 가장 먼저 바뀌는 사물이다. 그렇기에 그림에 대한 시대의 시선을 가장 민감하게 반영한다"며 "액자의 역사는 그림을 둘러싼 시대와 사회, 그리고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장대한 드라마"라고 했다. '사물들의 미술사' 시리즈 첫 권으로 나왔다. 앞으로 의자, 조명, 화장실 등을 다룰 예정이다. 해당 사물의 고유한 변천사와 더불어 장식 미술의 세계를 아우르도록 기획했다. 모요사. 1만6800원. 진선희기자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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