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시 표선면에 위치한 보롬왓에서 방문객들이 사진을 찍으며 추억을 남기고 있다. 한라일보DB 이모작 가능한 제주 메밀 5월부터 10월까지 꽃구경 전국 생산면적 37% '최대' 라벤더·수국 함께 즐기자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붓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한 구절이다. 소설의 주인공 허생원과 동이가 걸었던 강원도 봉평의 한 산길, 부서지는 달빛과 메밀꽃을 묘사한 이 장면은 소설의 내용과 절묘하게 맞물려 꽤나 인상적이다. 때문일까. 메밀하면 강원도 봉평, 달빛 등이 우선 떠오른다. 많은 사람들이 메밀의 주산지를 강원도로 오해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메밀 주생산지 '제주'=전국에서 메밀 생산량이 가장 많고 재배면적이 가장 넓은 곳은 바로 제주다. 제주 메밀의 생산량은 태풍 피해로 생산량이 급감한 2016년을 제외하고 30%가량으로 전국 최고다. 제주도내 메밀 재배면적도 지난해 845㏊로 전국 메밀 생산면적의 37%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지난 2016년 제주도내 메밀 재배 면적은 1382㏊로 전국 메밀 생산면적의 43.5%를 차지했다. 이는 타 지역의 3배 가량 넓은 수준이다. 때문에 하얀 메밀밭 장관은 제주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특히 제주는 기후적으로 메밀을 2모작으로 재배할 수 있어 파종시기에 따라 5~10월까지 메밀꽃을 볼 수 있다. 9~10월 가을로 향하는 길목이 아닌 5~6월 여름의 문턱에서 하얀 장관을 만날 수 있는 셈이다. 개화기간도 20~30일로 비교적 길다. 제주민속촌 전통음식만들기 체험에 참여해 빙떡을 만들고 있는 참가자들. 한라일보DB 6월 들어 슬슬 메밀 열매가 영글기 시작했지만 너른 들판 곳곳 하얀 메밀꽃이 박혀있다. 누렇게 익은 보리와 이달 만개한 보라빛 라벤더, 보름왓 초입 수국이 아쉬움을 달랜다. 무료 입장이 가능했던 보롬왓은 올해부터 입장료 3000원을 받는다. 보롬왓 내 위치한 카페에서는 직접 재배한 메밀로 만든 세련된 갈레트도 선보인다. 메밀꽃 축제장이 아니라도 하얀 메밀꽃 장관을 즐길 곳은 많다. 동쪽 백약이오름으로 가는 길목, 1100도로에서 산록도로로 향하는 길목, 송당마을 안 카페 인근 등. 하얀 메밀밭은 푸른 하늘과 오름, 검은 돌담과 어우러지며 가슴뛰는 장관을 선사한다. 단 대부분의 메밀밭이 농경지인만큼 함부로 들어가는 일은 자제하는 것이 좋겠다. 제주인의 삶에 녹아있는 메밀 자청비 신화에도 등장… 빙떡 등 음식 다채 메밀은 제주 자청비 신화에 등장하는 작물로, 제주의 신화·역사·생활과 관련된 이야기적 요소가 많다. 자청비 신화에는 제주에서 메밀을 키우게 된 이야기가 담겼다. 하늘나라를 어지럽힌 반란군을 진압한 자청비는 옥황상제는 주는 큰 상을 마다하고 오곡 씨앗을 받는다. 씨앗을 파종하고 보니 종자 하나가 비어 다시 하늘로 향한 자청비는 "땅이 없는 사람들이 들에 뿌려도 열매를 거둘 수 있는 곡식이 필요하다"며 씨앗을 받아온다. 그것이 바로 메밀씨앗이고, 메밀은 다른 작물보다 늦게 척박한 땅에 뿌려도 잘 자라 사람들의 양식이 돼 주었다는 얘기다.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메밀은 제주 신화에 등장할 만큼 오랜기간 구황작물로 활용됐다. 제주의 문화와 환경에 맞게 융합되고 발전돼 관혼상제 음식은 물론 다양한 형태로 제주만의 독특한 음식문화를 창출하고 있다. 옛 제주사람들은 소화가 잘 되지 않는 메밀을 소화효소가 뛰어난 무와 함께 섭취했고, 그 대표적인 것이 '빙떡'이다. 빙떡은 메밀전을 얇게 부쳐 그 위에 무채를 넣어 싸서 먹는 것으로, 명절이나 제사 때 꼭 조상께 올렸다고 한다. 사람이 돌아가셔서 저승사자를 위한 떡을 만들 때도 메밀가루를 반죽해 '개떡'을 만들었다. 개떡은 상여가 나갈 때 이 떡을 길에 버리면 혼백을 모셔가는 개가 이떡을 먹는다고 해 이같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그 외에도 돼지사골에 모자반(몸)과 메밀을 넣어 만든 '몸국'은 해녀들의 허기를 채워줬고, 메밀가루로 만든 수제비과 미역을 함께 끓인 '메밀수제비(메밀조배기)'는 나쁜 피를 배출시켜 혈액을 맑게 해 산모들을 위해 많이 만들었다고 한다. 제주사람들은 옛부터 쉽게 구할 수 있던 꿩으로 육수를 내고 여기에 메밀과 무를 넣어 '꿩메밀칼국수'를 끓여먹기도 했다.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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