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제주국제공항 활주로 주변에서 4·3행방불명 희생자 유해발굴 개토제가 진행됐다. 8년 만에 재개된 유해발굴 작업을 통해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고 있는 제주북부예비검속희생자 수백명의 유해를 찾을 수 있을지 관심이 커지고 있다. 한라일보 DB 제주북부 예비검속희생자 수백명 행방 묘연 제주공항 활주로 주변 암매장 가능성 높아 10일 개토제 이어 8년 만에 유해발굴 재개 "오늘 우리는 엄토(掩土)도 못한 채 오랜 세월 어둠에 갇혀 계신 4·3영령들을 밝은 곳으로 모시기 위해 모였습니다. 오랜 시간 차가운 땅 속에 계셔야만 했던 영령들의 넋을 기리며, 삼가 추모의 마음을 올립니다. " 지난 10일 '제주국제공항 4·3행방불명 희생자 유해발굴 개토제' 당시 원희룡 제주도지사의 '주제사' 중 일부이다. 개토제는 4·3의 진실규명과 유가족들의 한을 해소하려는 4·3희생자 유해발굴 사업에 앞서 4·3영령들께 유해발굴의 시작을 알리기 위해 마련된 제례였다. 지난 보수정권 당시 중단됐던 4·3희생자 유해발굴 사업이 8년 만에 재개된 순간이었다. # 예비검속 후 총살 집행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정부는 보도연맹원과 반정부혐의자들에 대한 예비검속을 단행했다. 보도연맹은 1949년 4월, 좌익 전향자를 계몽·지도하기 위해 조직된 관변단체였지만 6·25 전쟁이 발발하자 이들을 북한군에 협조할 우려가 있는 잠재적인 적으로 간주해 무차별 검속과 처형했다. 제주에서도 1950년 6월 말부터 8월 초까지 요시찰인에 대한 일제 검거가 이뤄졌다. 제주의 예비검속 대상은 공무원과 교사에서부터 학생과 부녀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이하 '4·3보고서')에 따르면 제주에선 제주경찰서와 서귀포경찰서, 모슬포경찰서, 성산포경찰서별로 예비검속이 이뤄졌다. 이 가운데 모슬포경찰서 관내(대정면·한림면·안덕면)와 성산포경찰서 관내(성산면·구좌면·표선면) 예비검속 희생자 수와 명단이 경찰 자료에 관련 기록이 남아 있는 반면 제주경찰서 관내(제주읍·조천면·애월면)와 서귀포경찰서 관내(서귀면·중문면·남원면) 예비검속자의 전체 숫자와 총살 희생자 수는 관련 기록이 없어 실상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제주북부예비검속 희생자는 예비검속 희생자 중에서도 한라산 북부지역인 제주읍·애월면·조천면 지역에 살던 주민 가운데 경찰에 연행 후 집단학살돼 현 제주국제공항 활주로 주변에 암매장되거나 바다에 수장된 희생자들을 말한다. 4·3보고서에 따르면 제주경찰서 관할 예비검속자에 대한 총살 집행은 두 번에 걸쳐 진행됐다. 처음 집행은 1950년 8월 4일, 제주경찰서·주정공장 등지에 수감된 500여 명을 제주항으로 끌고 배에 태우고 바다로 나가 수장시키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두 번째 집행은 1950년 8월 19일, 제주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됐던 수백 명을 제주비행장으로 끌고 가서 총살시킨 뒤 암매장하는 방식으로 자행됐다. #유해발굴 현황과 과제 '4·3 행방불명 희생자 유해발굴 개토제에 참가한 한 유족이 눈물을 흘리고 잇다. 일사천리일 것으로 기대됐던 4·3 유해발굴 사업은 보수정권이 들어서면서부터 갑자기 중단됐다. 윤승언 제주도 4·3지원과장은 "과거 용역을 통해 유해발굴 계획을 이미 세웠지만 정권이 바뀌면서 예산을 확보하지 못해 중단됐다"며 "8년 만에 유해발굴이 재개됨에 따라 북부예비검속희생자 유족에 이어 지난 5월에는 아직까지 행방불명 희생자를 찾지 못한 유족 137명을 포함해 모두 957명의 유족을 채혈해 서울대 법의학연구소에서 유전자 대조 검사를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제주비행장에 암매장된 것으로 추정되는 희생자에 대한 유해발굴은 지난 2007년과 2008년 2단계 사업으로 1·2차에 걸쳐 이미 진행돼 모두 388구를 발굴했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껏 발굴된 유해와 제주북부예비검속 희생자 유족들의 유전자 대조 검사 결과 제주북부예비검속 희생자로 확인된 유해는 단 한 구도 없었다는 점이다. 4·3 유해발굴 작업을 주관하고 있는 제주4·3평화재단의 장윤식 총무팀장은 "이 때문에 기존 발굴 장소 외에 새로운 암매장 장소가 있을 가능성이 높아 다시 유해발굴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며 "북부예비검속 희생자 숫자는 정확히 파악되진 않지만 당시 증언과 유족들을 토대로 200명 미만일 것으로 추산된다"고 말했다. 제주공항 활주로 주변에서 진행되는 이번 발굴은 오는 11월쯤 마무리될 것으로 전망된다. 윤승언 제주도 4·3지원과장은 "제주공항은 그동안 확장하면서 복토 공사가 진행돼 4·3 당시보다 6~7m 정도 높아진 것으로 추정된다"며 "워낙 깊이 파내야 하는 어려움이 있어서 유해가 발굴될지 사실 의문이지만 문화재를 발굴하듯이 조심스럽게 작업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재단은 제주공항 내부에 이어 제주공항 남쪽 외부와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와 북촌리, 서귀포시 대정읍 구억리에서도 발굴 작업을 펼칠 예정이다. <자문위원=문성윤 변호사 박명림 연세대교수, 박찬식 제주학센터장 양윤경 4·3유족회장, 특별취재팀=이윤형선임기자·표성준차장·송은범기자> 기고 / 장윤식 제주4·3평화재단 팀장 "4·3 당시 암매장 유해 양지로 드러나길…" 지난 4월 3일 4·3추념식에 참석한 문재인대통령은 행방불명희생자 표석이 세워진 곳으로 입장했다. 그리고 동백꽃을 헌화하고 "행방불명희생자 유해발굴과 신원확인에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하자"고 강조했다. 4·3행방불명희생자를 찾아 그리운 가족 품으로 돌려보내는 일은 우리에게 남겨진 커다란 과제이다. 지난 7월 10일 제주국제공항 유해발굴의 성공을 기원하는 개토제(開土祭)가 공항 현장에서 치러졌다. 2009년 5월 제주국제공항에서의 현장작업 종료 후 9년 만에 공항에서 다시 발굴이 본격적으로 재기됨을 상징하는 행사였다. 이날 제한적인 현장 조건 때문에 많은 분들이 함께하지 못했지만, 원희룡 도지사를 비롯한 현장 참가자 모두는 한마음 한뜻으로 암매장 유해가 고스란히 발굴되어 가족들 품으로 돌아오길 빌었다. 2006년 말부터 본격 진행된 발굴을 통해 400구의 유해가 발굴되었고 92구는 신원이 확인됐다. 제주공항에서만 388구가 발굴됐다. 하지만 당시 정드르비행장(현, 제주국제공항)에서 희생된 것으로 추정되는 제주북부예비검속 희생자는 확인이 되지 않았다. 당시 제주경찰서 관내에 수감됐던 희생자들이 1950년 여름 어느 날 군 트럭에 실려 정드르비행장으로 끌려가는 것을 본 목격자들은 많은데 아직까지 발굴이 되지 않은 것이다. 이번 발굴을 통해 이분들의 유해가 드러나길 기대해본다. 이에 앞서 지난해 제주도는 제주4·3연구소에 의뢰해 '4·3 행방불명인 유해발굴 예정지 긴급 조사 용역'을 시행, 제주공항 등 5개 지점을 암매장지로 추정한 바 있다. 유해발굴 및 유전자감식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지난 2월 제주도가 제주4·3평화재단을 위탁기관으로 지정해 협약을 체결했다. 이후 재단은 자문위원 위촉, 제주공항 지적측량, GPR(지표투과레이더) 탐사, 관계기관 업무협약, 유전자 감식계약 및 유가족 추가채혈 등 유해발굴 및 유전자감식 준비를 해왔고 개토제를 시작으로 공항 내 3개 지점에 대한 본격 시굴조사에 돌입하게 된다. 또한 공항 밖 미발굴 암매장지로 추정한 4곳도 9월까지는 발굴을 마칠 예정이다. 지난 9년전 발굴 당시에 비해 증언 지점의 불확실성 등 어려움도 예상된다. 9년 전 차디찬 땅속에서 견뎌온 참혹한 유해들은 학살·암매장의 전모를 증언하고 있었다. 행방불명희생자 유해를 찾는 일은 유가족들의 한을 해소하는 일이지만, 역사의 진실을 규명하는 일이기도 하다. 단 한 구의 희생자 유해라도 찾아 그리운 가족 품에 안겨드리고, 4·3의 새로운 진실이 밝혀지길 바란다.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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