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사 항일운동 발상지에 석축만 덩그러니 남아있는 모습. 이윤형기자 법정사항일운동·조천만세운동·해녀항일운동 손꼽혀 100주년 맞았지만 역사 흔적 상당수 보존·관리 미흡 올해는 일제에 항거하며 독립운동을 벌인 3·1운동 100주년을 맞는 해이다. 제주도에서도 한반도의 다른 지방에 못지않는 가열찬 항일운동이 전개됐다. 무오법정사항일운동, 조천만세운동, 해녀항일운동 등 제주도의 3대 항일운동은 지역사적 항일투쟁의 의미를 넘어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는 점에서 커다란 의의가 있다. 하지만 제주도내 항일운동의 역사적 장소나 흔적들은 상당수가 제대로 보존·관리되지 못하고 있다. 체계적인 학술연구 조명 작업도 미흡하다. ▷제주 3대 항일운동=제주도는 3·1운동 5개월여 전에 이미 대대적인 무장독립운동이 일어난 지역이다. 1918년 10월 7일 서귀포시 도순동 법정사 승려들이 중심이 돼 국권 회복을 목적으로 일어난 법정사 항일운동이 그것이다. 법정사 주지였던 김연일과 방동화 등 승려들을 중심으로 도순리 주민과 인근 하원리·월평리·영남리 등의 주민 700여 명이 참가했다. 항일운동 결과 모두 66명이 일제에 의해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 법정사 항일운동은 제주도내 최초이며 최대 규모의 무장항일운동이다. 3·1운동 이전에 제주민에 의한 대규모 무장항일운동이 펼쳐졌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와 중요성이 크다. 해녀항일운동과 관련 구좌읍 하도리 연두망동산에 세워진 기념탑. 해녀항일운동은 1931~1932년에 걸쳐 구좌, 성산, 우도의 해녀를 중심으로 생존권을 침해하는 일제와 해녀조합에 항거하면서 전개됐다. 해녀가 중심이 돼 일제의 수탈과 식민지 약탈정책에 저항했다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해녀항일운동은 문재인 대통령도 특별히 언급할 정도로 주목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1932년 제주 구좌읍에서는 일제의 착취에 맞서 고차동, 김계석, 김옥련, 부덕량, 부춘화 다섯 분의 해녀로 시작된 해녀항일운동이 제주각지 800명으로 확산됐다"며 "3개월 동안 연인원 1만7000명이 238회에 달하는 집회시위에 참여했다. 지금 구좌에는 제주해녀 항일운동기념탑이 세워져 있다"고 말했다. 해녀항일운동과 관련 구좌읍 하도리 연두망동산에 세워진 해녀운동 주역 조형물. 조천만세운동과 관련해서도 미밋동산을 중심으로 기념탑과 항일기념관이 들어서는 등 성역화 사업이 진행됐다. 만세운동을 주도한 14인의 생가터는 2010년 마을 차원에서 표석을 세우는 등 기리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 일부 생가터는 허물어지는 등 날로 훼손되고 있는 실정이다. 마을 곳곳에 조천만세운동과 관련한 유적지와 현장이 많은 만큼 가이드북 등을 제작 활용하는 등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조천만세운동을 주도한 14인의 생가터 가운데 일부는 허물어지는 등 날로 훼손되고 있는 실정이다. 제주도 항일운동은 현대사 최대의 비극인 제주4·3을 거치면서 그 의미가 축소돼온 측면이 크다. 관련 유적에 대한 보존·정비는 물론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고 계승하는 데 있어서 당국의 지원과 관심이 필요하다. 이윤형기자 [전문가 기고] 박찬식 제주학연구센터장 "체계적 학술연구·보전방안 찾아야" 3·1운동 5개월여 전에 일어난 법정사 항일운동을 비롯 제주에서는 조천만세운동, 해녀항일운동 등이 전개됐다. 제주도에서 일어난 항일운동의 배경에는 식민시대 이전부터 중앙 정부의 수탈에 적극적으로 저항했던 제주도민들의 공동체적 정신이 존재한다. 이러한 저항정신은 일제의 식민지 수탈에 맞서는 항일운동의 중요한 원동력으로 작용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속 연구는 여전히 미흡하고 관련 유적지와 현장 등은 제대로 보전·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특히 해녀항일운동에 대해서는 제주의 특수한 해녀와 한국의 민족운동과의 결합을 넘어서서 더욱 보편적인 인식을 확보해 나가려는 연구 노력이 필요하다. 이 지점에서 보편성을 갖는 기억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해녀 및 해녀투쟁의 특수성과 미시사에서 실마리를 찾는 게 올바르다고 생각된다. 또한 법정사 항일운동, 조천만세운동도 그렇지만 구좌읍과 우도면에는 해녀항일운동과 연관된 유적지 등도 산재해 있다. 하지만 아직도 항쟁에 나선 해녀들과 수많은 청년 등 해녀운동 주역의 독립유공자 선정을 비롯 관련 사적지에 대한 고증과 기념표석 설립 등 다양한 기념사업은 미해결 과제로 남아있다. 따라서 일회성 기념행사에 그칠 것이 아니라 앞으로 제주항일운동전반에 대한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사업계획의 수립과 활용방안을 마련해 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이 기사는 한라일보 인터넷 홈페이지(http://www.ihalla.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문의 메일 : webmaster@ihall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