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작가에서 비자림까지 60여편 관통하는 제주 4·3 "그날 기억할 팽나무마저…" 아흔둘, 오래 살아 미안하다는 박경생 할머니는 찐빵을 먹지 않았다. 어느 여름날 들이닥친 군인들에 의해 끌려나간 모습이 마지막이었던 남편 때문이다. 며칠 굶은 남편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트럭에 태우려는 남편을 보고 동녘 길가에 있던 빵장수에게 달려갔다. 아내는 온 힘을 다해 막 출발하는 트럭 위로 빵 한봉지를 올렸다. 훗날, 1950년 지금의 제주국제공항이 들어선 정뜨르비행장에서 남편이 학살당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날 이후 할머니는 찐빵을 먹을 수가 없었다. 제주4·3연구소장으로 있는 허영선 시인의 산문집 '당신은 설워할 봄이라도 있었겠지만'은 '난 찐빵을 안 먹습니다'로 시작된다. 죽음의 불구덩이를 건너온 이들은 지금 서러워할 봄이라도 있지만 4·3 당시 맥없이 죽어갔던 사람들은 그마저 느낄 수 없는 슬픔이 전해지는 사연이 담긴 산문집의 풍경을 압축해 보여주는 글이다. 겨자빛 표지에 제주 백유 작가가 그린 한송이 동백이 피어난 산문집은 시인이 만나온 4월 이야기로 채워지고 있다. 일찍이 '제주 4·3을 묻는 너에게'를 통해 이즈음 도모되는 '4·3 전국화'의 불씨를 놓았던 시인은 이번에도 아직 끝나지 않은 4·3을 붙들었다. 저 멀리 경계를 살아가는 재일작가에서, 가까이는 삼나무 베어지는 비자림로까지 닿는 60여 편을 꿰고 있는 건 '삶과 죽음이 머리카락 한 올 차이였던 제주4·3'이다. 시인은 살아남은 이들이 고사리를 못먹고, 양하를 입에 못대는 그 고통을 감히 어떻게 안다고 하기 어렵지만 그들의 비린 시간 속에 인간이란 무엇인가란 물음이 있고, 답이 있다고 했다. 마침내 입을 연 생존자들은 현재진행형인 4·3을 증언했다. 베트남, 인도네시아, 일본 오키나와엔 또다른 4·3이 있었다. 지금의 제주는 4·3과 무관한가. 아니다. 1992년 유해 11구가 발굴되면서 4·3의 진실을 드러냈던 아픈 역사의 공간 다랑쉬굴 가는 길에서 시인은 구불구불 좁은 길이 쭉 뻗은 너른 길이 된 걸 봤다. "4·3으로 잃어버린 마을이 되고 그나마 그날을 기억하는 비틀린 팽나무 한그루. 그마저도 사라질 위기였다." 마음의숲. 1만4000원.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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