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즈음 제주에서 열정적으로 창작하는 소설가를 꼽는다면 강준(본명 강용준) 작가가 앞자리에 있을 것이다. 1987년 희곡 작가로 문단에 발을 디뎌 '폭풍의 바다' 등 5권의 희곡집을 냈던 그는 2014년 강준이란 필명을 달고 장편 '붓다, 유혹하다'를 쓴 이래 소설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2017년에는 한국소설작가상을 받았다. 지난 3월부터 한라일보 홈페이지에 주1회 온라인 장편 '갈바람 광시곡'을 연재하고 있는 강 작가가 잠시 숨을 고르듯 단편집을 묶어냈다. 그간 틈틈이 창작해온 8편을 담은 '오이디푸스의 독백'이다. 표제작에는 15년 만에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기 위해 달려오다 교통사고를 당한 아들의 목소리가 흐른다. 월남참전용사로 자식들을 억압했던 아버지에게 띄우는 아들의 마지막 넋두리가 울림을 준다. '그늘진 사랑'엔 어머니의 강압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야 했던 딸이 등장한다. 이 딸 역시 생을 다해 이별을 앞두고 있는 어머니에 대한 원망을 거두지 않는다. '자서전 써주는 여자'는 강 작가가 희곡 작품에서 수 차례 다뤘던 제주4·3에 얽힌 사연이 펼쳐진다. 시아버지가 희생된 서하리 사건의 가해자로 서북청년단이었던 장충삼 회장과 그의 자서전을 쓰게 된 여자의 기이한 운명을 담았다. '타자의 얼굴', '일그러진 만년필'은 비뚤어진 등단 행태를 보여준다. '타자의 얼굴'에선 시대를 풍자했던 연극 공연을 하는 대학생을 빨갱이로 내몰며 악랄하게 고문했던 경찰이 훗날 이름을 바꾸고 데뷔해 문학상까지 탄다. '일그러진 만년필'은 만년필이 화자가 되어 문인이 되고 싶은 신옥지란 인물의 허영을 까발린다. 강 작가는 이번 작품집을 내면서 "불신, 불화와 불통이 인간관계를 가로막고 있는 세태에서 화해와 사랑의 가치를 찾고자 했다"고 적었다. 여전히 권위주의 세대의 사고 방식에 잠겨있는 부모들과 갈등을 빚는 자식들이 그려지는데 대부분의 단편에 글을 쓰는 인물들이 이야기를 끌어가는 점은 흥미롭다. 일부 작품에서 기본기도 없는 문인들의 양태를 노골적으로 비판하면서도 문학이 지닌 힘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작가의 마음이 읽힌다. 문학나무. 1만5000원.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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