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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성평등 문화가 깃든다] (10)에필로그
"껍데기는 완성… 속 채울 알맹이 고민할 시점"
이소진 기자 sj@ihalla.com
입력 : 2019. 09.04. 00:00:00
선구적 제도화 분야에도
체감·실효성 여전히 미흡
성평등 정책 등 뒷받침해
성감수성 합의 노력해야

제주지역 성평등 정책은 제도화 분야에서는 선도적이다. 반면 체감도, 실효성 등의 분야에서는 큰 발걸음을 내딛지 못하고 있다. 이상과 현실처럼 그 차이는 좀처럼 좁혀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앞으로 성평등 정책의 알맹이를 무엇으로 채울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개념 정리와 방향 정립이 요구되고 있다.

2019 대구 여성행복 일자리박람회.

▶선도적인 제도·기구=제주 성평등 실현을 위한 추진체제는 속도를 내고 있다.

우선 2007년 1월 제주도여성발전기본조례가 제정된 후 몇 번의 개정을 거쳐 2015년 12월 제주특별자치도 양성평등 기본 조례가 완성됐다.

이 조례를 통해 양성평등 시행계획, 성주류화사업 추진 정책을 심의·조정하는 양성평등위원회(위원장 도지사) 설치가 가능해졌다. 특히 제주도 양성평등정책책임관(기획조정실장)이라는 자리가 마련돼 성별영향분석평가, 성인지예산 및 결산, 성별분리통계 관리 등이 시작됐다.

제주도의회 조례 심사과정에 성별영향평가 제도를 도입하는 내용의 '제주도의회 성평등 기본조례'가 올해 제정돼 내년 1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며, 제주도에서는 2014년 8월 제주특별자치도 성별영향평가 조례를 만들어 반영하고 있다.

또 제주도특별자치도 성인지 예산제 성과 향상을 위한 관리 조례(올해 7월 제정), 제주도 가족친화 사회환경 조성 및 지원에 관한 조례(2012년 6월 제정), 제주도 영유아보육조례(2006년 4월 제정·2014년 4월 전부개정) 등이 마련돼 성평등 기반을 다지고 있다.

조직으로는 지난해 8월 제주도 행정부지사 산하 성평등정책관이 신설됐으며, 지난 2014년 3월 연구기관인 제주여성가족연구원이 개원했다. 제주도의회에서는 성평등정책포럼, 제주여성정치포럼 등이 설치, 운영되고 있다.

제주여민회, 제주청년협동조합 등의 민간단체에서도 성평등 관련 위탁사업은 물론, 신규 사업을 개발하며 민간 분야 확산에 기여하고 있다.

부산 사상구에서 여성친화공간으로 조성한 우먼라이브러리

서울시성평활동지원센터

▶현실은 속 빈 강정=제주여성가족연구원에서 발간한 '2018 통계로 보는 제주여성가족의 삶'을 보면, 가사노동이 여성의 전유물이라는 성 고정관념이 여전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요일평균 가사노동시간을 보면 여성은 1999년 3시간 19분에서, 2017년 2시간 56분으로 20여분 줄었지만, 남성은 1999년 35분, 2017년 49분으로 변화가 크지 않다.

경제활동인구와 경제활동참가율도 점진적인 증가세를 보이고 있지만 남녀 간 격차는 여전한 것으로 확인됐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2010년 58.4%에서 2017년 66.1%로 증가했지만, 남성과의 격차는 2010년 16.3%p, 2017년 12.5%p 수준으로 유지돼 갭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또 경제활동을 하는 여성 절반이 서비스업(20.3%), 사무직(19.5%), 서비스·판매직(14.1%)에 종사하는 것으로 조사돼 취업에 한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제주 성평등교육센터 교육현장

행정정책을 살펴보면, 제주도정 주요 정책에 대한 성인지 관점을 통합하기 위한 '성인지 관점 사전 검토 의무화 제도'는 올해 가이드라인을 수립해 내년 본격화한다는 방침이다. 이 제도는 서울시에서 앞서 운영되고 있다. 서울시는 시청 내 협조 결재 대상 부서 11곳을 지정해 의무화하고 있다.

지난 2017년 여가원에서 제안한 여성힐링공간 '쉼팡' 조성사업은 지난해 제주도지사 공약에도 담겼지만 이달 용역 심의에 들어간다.

'제주 100인의 아빠단'에 참여한 박준형씨의 가족.

제주여성의 삶을 재조명하는 발굴 사업이나 젠더 거버넌스 허브 공간 구축 등의 사업 등도 제안 단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특히 성평등에 대한 이해나 의지가 가장 어려운 과제로 지목되고 있다. 사람마다 자라온 환경, 기준, 이해도가 제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서로의 감수성에 대한 합의를 맞춰가려는 노력이 수반돼야 할 것이다. 이소진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인터뷰] 조한혜정 제주도양성평등위원회 부위원장 "독특한 제주만의 성평등 어젠다 가꿔야"

제주도양성평등위원회(위원장 원희룡 제주도지사) 부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진보·개혁성향 사회 원로' 조한혜정 연세대 명예교수가 제주지역 성평등 정책 실효성 확보를 위해 제주만의 성평등 어젠다를 가꿔야 한다고 제언했다.

지난달 30일 제주에서 열린 세계한민족여성네트워크 제주교류협력 행사장에서 만난 그는 "육지 지표를 가지고 제주를 이야기 하기 힘들다"고 밝혔다.

그는 "해녀들이 물질을 많이 해서 돈을 많이 벌었다. '딸 많은 집이 부자'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라면서 "그러면서도 제사는 아들에게 의존한다. 극단적으로 여성은 노비의 삶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러한 지역적 특이성을 살린 성평등 정책이 만들어져야 한다"며 "육지하고 다른 독특한 문화의 것을 갖고 있는데, 육지의 지표로 잴 수 없다"고 강조했다.

조한혜정 명예교수는 "개개인이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인 자율권을 갖고 있어야 하며, 이러한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며 "대표적인 것이 상속의 문제"라고 지목했다.

그러면서 "제주의 문제는 권리에서 시작한다"며 "재산 상속 등의 분야에서 여성은 사회적 존재로서 덜 비중있는 존재였다"고 분석했다.

그는 "사회적으로 잘못한게 없는데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 받는 상황이 있는 것을 분석하고 해결해야 한다"며 "개개인이 자기의 삶을 생각하는 방향에서 충실히 살아내는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주도 성평등 정책 추진에 대해서도 "잘 하고 있다"면서도 "육지에서 만든 지표로 맞출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옛 제주 남성들이 술을 많이 먹는 것은 '노동에서 소외된 좌절'이 원인"이라며 "제주가 육지와 달리 예외적으로 나오는 지점을 간파해야 진짜 남녀가 존중하고 신뢰 협력하는 방향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제주 미래를 위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에 포커스를 맞춰야 한다"며 "지역 자체내 분석을 하면서 어젠다를 가꾸길 바란다"고 제언했다.

이소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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