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리포트]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왕지 환승장에서 동남쪽으로 2.5㎞쯤에 왕지 또는 고산화원이라 부르는 곳이 나온다. 여기까지 오는 길은 낙엽활엽수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서파산문에서는 자작나무, 황철나무 등이 울창한 숲을 이루면서 간간이 거대하게 자란 침엽수들을 볼 수 있다. 만주잎갈나무가 그 중 가장 많다. 이 나무는 높이가 무려 40m에 달할 정도로 크게 자란다. 백두산 일대의 목재자원 중 으뜸이다. 압록강 뗏목의 대부분은 바로 이 나무다. 산을 오를수록 침엽수가 차지하는 비율이 높아진다. 침엽수와 사스래나무 혼합림. 왕지 가는 길에 설치한 데크를 따라 조금 가면 그 중에서 단연 크게 자란 침엽수를 보게 되는데 종비나무다. 중국에선 홍피운삼(紅皮雲杉)이라 하는데 나무껍질이 붉은색이라는 뜻이다. 학명은 코리아에 나는 가문비나무라고 해서 피체아 코라이엔시스(Picea koraiensis)다. 나무들은 이렇게 국경을 넘나들며 서로 어울려 살고 있다. 이제부터는 그야말로 고산화원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꽃의 천국이다. 약 1.6㎞ 구간이 온갖 꽃으로 덮여 있다. 구릿대는 거의 2m에 달했는데 한창 개화기다. 붓꽃, 자주꽃방망이, 큰깃분취, 고산미역취, 수리취, 애기원추리, 참취, 개구릿대, 큰엉겅퀴, 우산풀, 박쥐나물, 귀박쥐나물, 큰세뿔박쥐나물, 털박쥐나물, 생열귀나무, 눈빛승마, 동의나물, 촛대승마, 솔나물, 백당나무, 냉초 등 수십여종을 볼 수 있었다. 그 중 상당수는 한라산에도 피는 꽃들이다. 꿩고비, 음양고비, 고사리 같은 양치식물도 눈에 띤다. 이 고사리 종류들은 모두 식용하는데 그 중에서 꿩고비는 어린잎을 삶은 후 말린 것을 미채건(微菜乾)이라 하여 우리 동포는 물론 중국 동북지방 사람들도 아주 좋아한다. 붓꽃 생열귀나무 수리취 털쥐손이. 모두 한라산에 자라는 꽃들과 공통종이다. 드디어 왕지 입구가 나타났다. 은방울꽃, 관중, 모싯대, 귀박쥐나물, 동의나물, 두루미꽃, 나도옥잠 같은 종들이 나타났는데 이것은 한라산 구상나무숲과 거의 똑같은 상황이랄 수 있다. 왕지는 분화구의 동남쪽에서 진입한다. 50여m 가면 수면에 닿는다. 수면의 해발고는 1850m, 직경은 남북 40m, 동서 30m, 면적 1200㎡, 최대 수심 3.5m다. 수면 주위를 한 바퀴 돌 수 있게 난간이 설치되어 있는데 둘레가 350m 정도다. 전체적으로 한라산 물장올이나 물영아리를 연상하게 한다. 길림성장백산보호관리위원회에 따르면 북측은 고산악화림, 남측은 초원이다. 악화란 사스래나무를 말한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화구 내의 식생은 분비나무와 사스래나무 혼합림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이 왕지는 해발고로 볼 때 백두산 최고봉이 2744m이므로 그 중턱쯤 된다. 그러므로 높이만으로 본다면 낙엽활엽수림이 형성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러니 서파산문에서 올라오면서 봤던 숲이 연장되는 것이 맞는 것일 것이다. 북파 즉 북사면은 이 정도 해발고에선 초원을 볼 수 없다. 나무의 바다라 할 만큼 울울창창 그대로다. 왕지 전경. 그러므로 분화구 내는 강한 바람과 햇빛을 막아 교목림이 유지되고 있는데 반해서 외부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지형적 요인으로 해발고에 비해서 아고산대가 일찍 시작하고 고산초원이 나타나며 부분적으로 침엽수림이 형성된다 해도 매우 엉성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한라산 영실탐방로 초입 해발 1400m의 관목림과 초원, 다 올라서면 구상나무숲이 나타나고 다시 윗세오름까지 초원이 시작되는 현상과 유사하다. 이 지점은 해발 1600m 정도 된다. 관음사 탐방로와 성판악 탐방로라면 아직 초원은 나타나지 않는 높이다. 왕지에서 동쪽으로 5㎞ 정도 가면 금강대협곡, 여기서 15㎞ 정도 직진하면 압록강 발원지다. 이 구간은 울창한 숲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동쪽으로 가면 백두산의 정남향이 되는데 이곳은 대연지봉, 북수백산 등 고산연봉이 즐비하다. 이곳은 부석층이 두꺼운 데다 남향이어서 매우 건조하다. 왕지보다 훨씬 낮은 곳까지도 초원이거나 무식생대가 펼쳐진다. 눈처럼 반짝이는 하얀 부석지대가 끝도 없이 펼쳐진다. 한라산의 남사면 돈내코 탐방로가 해발 1500m부터 초원이 펼쳐지는 것과 흡사한 현상이다. 산 정상이 하얀 부석으로 되어 있어 백두산이라 했다면 그것은 조선에서 바라본 사람들이 지어냈을 것이다.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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