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말 촬영된 사진으로 강창언 촌장이 돌가마인 노랑굴 안에 허벅 재임을 하고 있다. 20세기 제주박물지 4권 왕가 묘·도기·석인상 등 ‘탐라국’ 실체 찾기 노력 "가장 먼저 제주섬에 온 사람, 그 사람은 누구일까? 돌담에 기대어 한없이 바다를 보고 한라산을 보면서 생각하고, 노인이 된 지금도 궁금하다." 강창언 제주도예촌장이 '20세기 제주박물지' 시리즈 4권인 '탐라야사(耽羅野史)'를 묶은 배경이다. 그는 지난 시절 '탐라'의 궤적을 찾아나서는 동안 그것들이 방치되거나 사라지는 현장을 지켜봤다. 뒤늦게 국가문화재로 지정된 경우도 있지만 지금은 아예 흔적조차 사라진 곳이 적지 않다. 그가 다룬 주제에서 짐작하듯 '탐라국'을 중심으로 우리가 미처 돌보지 못했던 섬의 문화유산을 담았다. 1980년대부터 선사 유적 발굴, 제주가마(석요) 연구에 나섰고 동자석, 돌하르방, 농기구, 제주 방사용 탑, 도대불 등을 조사했던 그는 책 곳곳에서 '다른' 목소리를 들려준다. 그간에 써온 옹기라는 명칭은 통칭이 될 수 없다며 도기로 표기해야 한다고 언급한 그는 '탐라도기'란 이름으로 유구한 역사를 주장했다. 제주목관아는 탐라국도성의 일부이고 돌하르방은 탐라국도성에 있던 탐라국석인상이라고 했다. 무신도는 구도, 필력, 채색 등 상당히 격을 갖춘 탐라국투영신상화(神像畵)로 불렀다. 탐라순력도 영인본 제작 과정을 소개하는 대목에선 원근과 농도가 유다른 그 그림을 아래에 세우고 서서 봐야 한다고 적었다. 저자는 1980~2000년에 촬영한 사진 100여 장을 곁들였다. 그는 이를 "파괴, 멸실, 도난, 유실 등 총체적 무관심 속에 남겨진 한 장의 기록 사진"이라고 알렸다. 가시아히. 3만5000원.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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