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평화공원의 전경. 사진=한라일보DB 코로나 여파 기념관·어린이체험관 임시 휴관에도 봉안실·봉안관·평화공원 야외 시설은 관람 가능 평화재단 ‘온라인 추모실’ 통해 희생자 넋 기리기도 제주의 4월은 시리다. 흐드러지게 핀 벚꽃이 찬란한 봄을 알려도 이맘때면 돌아오는 그날의 기억 때문이다. '제주4·3'. 72년 전 뼈아팠던 삶은 여전히 잊히지 않지만 제주사람들은 이를 기억하며 화해, 상생의 길을 걷고 있다. 4월이면 발길이 잦아지는 '제주4·3평화공원'은 그런 삶의 행로를 보여준다. 4·3으로 처절했던 제주도민의 삶을 기억하고 추념하면서 화해와 상생의 미래를 얘기한다. 공원 곳곳에서 그 역사를 마주하고 이를 다시 새기는 일은 평화·인권의 의미를 되짚게 한다. 올해는 코로나19 여파에 추모 발길이 조심스럽다. 공원 내 4·3평화기념관과 어린이체험관도 휴관에 들어갔다. 그래도 공원은 문을 열어 추모객을 맞고 있다. 제72주년 4·3추념식이 열리는 3일 오전만 피하면 위패봉안실 등도 찾을 수 있다. 행방불명인 표석. 그의 말마따나 4·3평화공원은 무수한 기억의 말을 품고 있다. 이는 공원 곳곳에 놓인 상징조형물을 통해서도 들을 수 있다. 아이를 끌어안고 죽어가는 여인을 형상화한 조각 '비설(飛雪)'은 참혹한 4·3의 한 장면이다. 당시 희생됐던 봉개동 변병생 모녀를 모티브로 했다. 봉개동에서 2연대 토벌작전이 벌어진 1949년 1월 6일, 군인에 쫓기다 젖먹이 딸을 업은 채 총에 맞아 숨진 그녀는 곧, 아무런 죄 없이 희생된 제주사람들이다. 남녀 어른과 청소년, 어린 아이의 '수의'(壽衣) 다섯 개를 형상화한 조형물 '귀천(歸天)'이나 4·3 희생자의 이름, 성별, 사망장소 등을 기록한 '각명비', 여태 시신을 찾지 못한 행방불명인을 위한 표석도 70여년 전 아픔을 지우지 않고 드러내 보인다. 멀리 있어 공원을 찾지 못하는 이들을 위한 온라인 추모관도 열려 있다. 제주4·3평화재단 홈페이지에 마련돼 있는 '사이버 참배' 코너다. 방문자들은 "아픈 역사를 너무 늦게 알았다", "올바른 역사가 백비에 새겨지길 기원한다" 등의 추모글로 희생자의 넋을 기리고 있다. 코로나19 여파에 4·3 희생자 추념식은 축소됐지만 제주 섬 안팎에선 저마다의 방법으로 그날을 기리고 있다.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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