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시일의 약속들은 봉쇄 조치 때문에 모두 취소되었고 다른 약속들은 스스로 연기했다. 나는 예기치 못한 공백기에 놓였고 공허감에 휩싸였다." 지난 2월 29일, 1982년생인 이탈리아 유명 작가 파올로 조르다노가 코로나19 사태의 한가운데서 써나간 글의 한 대목이다. 전 세계로 확산된 코로나19로 가장 심각한 타격을 받은 나라 중 한 곳인 이탈리아에서 그가 약 30편에 걸쳐 짤막짤막하게 써나간 문장들이 한 권의 책으로 엮였다. '전염의 시대를 생각한다'는 제목이 달린 책은 오늘날 우리가 허무와 고통만을 느낄 게 아니라 그 현상의 이면을 섬세하게 읽어내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죽음에 대한 공포 때문만은 아니다. 현재의 사태는 우연한 사고도, 천재지변도, 새로운 것도 아니며 앞으로 또 다시 벌어질 수 있어서다. 저자는 전염의 시대가 우리가 어디에 있든 다층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일깨웠다고 했다. 빠르고 효율적인 교통망이 바이러스의 수송망이 되었고 현대사회가 이룬 성취는 도리어 형벌로 돌아오고 있다. 전염은 또한 인간관계를 위태롭게 만들고 숱한 사람들에게 고독감을 안겨줬다. 나이, 성별, 지역, 국적, 인종도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전염의 시대엔 투명한 정보는 절차나 권력의 문제가 아니라 필수적인 예방 의학이라는 점도 배우고 있다. 전염의 운명에 다시 묶이지 않으려면, 묶이더라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책의 마지막 구절에는 "이 모든 고통이 헛되이 흘러가게 놔두지 말자"는 말이 나온다. 그는 "정상적인 일상이 우리에게 허락하지 않았던 '생각의 시간'으로 이 시기를 더 잘 활용할 수 있다"며 "우리가 어떻게 여기에 이르렀는지, 어떻게 되돌아가고 싶은지 등을 생각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고 했다. 김희정 옮김. 은행나무. 8500원.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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