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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사람 장한철과 청산도의 사랑을 기억하며
1770년 표류로 청산도 표착 뒤 생환 '표해록' 남겨
'표해록' 속 청산도 여인과 못다이룬 짧은 사랑 소재
완도군 하트 모양 '개매기' 설치해 체험장 활용 홍보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입력 : 2020. 06.07. 16:55:17

전남 완도군에서 장한철 '표해록'의 배경이 되는 청산도에 설치한 하트 모양의 개매기. 하늘에서 내려다본 장면으로 완도군은 썰물 때 모습을 드러내는 개매기를 체험장으로 활용하면서 장한철과 청산도의 인연을 알리기로 했다. 사진=완도군 제공  

조선시대 '표해록(漂海錄)'을 남긴 제주 사람 장한철과 전남 완도군 청산도의 인연이 약 250년 만에 되살아났다. 완도군은 '해양문학의 백미'로 꼽히는 제주도유형문화재인 장한철의 '표해록'을 바탕으로 청산도 조씨 여인과 장한철의 못다한 사랑을 주제로 최근 하트(♡) 모양의 '개매기' 체험장을 만들었다.

 지금의 제주시 애월읍 애월리 태생인 장한철은 1770년(영조 46년) 10월(음력) 향시에서 수석으로 합격한 뒤 서울 예조에서 실시되는 회시(會試)를 치르기 위해 그해 12월 25일 제주 바다를 건너다 거친 비바람 탓에 표류한다. 장한철을 포함 일행 29명이 유구(지금의 오키나와) 지경까지 떠내려가는 등 조난 끝에 도착한 곳은 청산도였다. 1771년 정월 초6일 청산도에 다다랐을 때 살아남은 사람은 겨우 8명이었다. 장한철은 당시 청산도 사람들이 바다에 빠져 죽은 제주 사람들의 영혼을 위해 제사를 지내주고 생존자들이 머무는 7일 동안 돌아가며 밤낮없이 돌봤다고 '표해록'에 기록해놓았다.

 

사진=완도군 제공

'표해록'은 이곳에서 장한철이 청상과부로 살던 스무살의 여인과 사랑을 나눈다고 쓰여있다. 여인은 청산도 표착 직전 장한철의 꿈 속에 나타났던 인물로 훗날 실제 현실에 등장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소설과 같은 짧은 만남이었지만 여인은 장한철에게 "낭군이 저를 버리지 않는다면, 가히 남풍이 불 때를 말미암아 좋은 소식을 듣게 은혜를 베푸소서"라며 "5년을 기한으로 기다리겠다"고 말한다.

 완도군은 이같은 두 남녀의 애절한 사연을 영화 '서편제' 촬영장으로 잘 알려진 청산도에 하트 '개매기' 체험장으로 담아냈다. '개매기'는 물빠짐이 뚜렷한 바닷가에 돌담을 쌓아 썰물 때 가두어 잡거나 말목을 박아 만조시간에 그물을 올려 물이 빠지면 물고기를 잡는 전통 어로 방식을 뜻하는 방언이다. 체험장은 가로 50m, 세로 50m의 넓이로 1년을 상징하는 365개의 말목을 박아 '슬로길'이 시작되는 도락포구에 설치했다.

 물이 빠지는 시간에 따라 하루 두차례 모습을 드러내는 하트 '개매기'에는 제주로 떠난 장한철이 그리워 바닷가에 나가 하염없이 눈물을 훔쳤을 한 여인의 절절한 사랑이 250년 뒤에라도 이루어지길 바라는 의미가 담겼다. 말목 위에는 낮에는 햇빛이, 달밤에는 달빛이 반사될 수 있도록 반사판을 부착해 시각적 효과를 더하고 있다. 완도군은 슬로걷기 축제 등에 맞춰 해당 체험장에서 맨손으로 물고기를 잡는 프로그램 등을 운영할 계획이다.

 

유채꽃 핀 청산도 전경. 사진=완도군 제공

2019년 기준 청산도 인구 수는 2329명에 이른다. 이곳에 한 해 약 28만명의 관광객이 찾는다. 완도군 관광과 이송현 과장은 "이번에 하트 '개매기'를 설치하면서 청산도를 기록한 장한철 '표해록'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는 사람들이 많았다"면서 "앞으로 청산도 관광해설사들에게 '표해록'을 알리고 그 내용을 요약한 표지석이나 안내판을 설치하는 방안도 구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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