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용순'. 내가 살고 있는 경기도 양평 근처에는 두물머리란 공간이 있다. 지명처럼 두 개의 물이 만나는 공간이라는 뜻인데 두 강이 만나는 그 곳의 고요하고 너른 아름다움 덕에 사시사철 방문객들도 많고 드라마와 예능 등 다수의 프로그램을 통해 유명세를 탄 곳이기도 하다. 지금보다 어린 시절에는 강이나 산을 보러 가는 일은 드물었다. 늘 도시에서 살았기에 '가끔 자연을 보러 가자'의 마음으로 작정하고 향한 곳은 늘 바다였다. 부산과 제주의 바다들을 특히 좋아하는데 그 친구들을 보러 혼자 훌쩍 1박 2일의 바다 여행을 다녀온 적도 꽤 있었다. 바다는 이렇게 발음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은 기분을 주는 공간이다. 특히 인적이 드문 바닷가에 앉아 출렁이는 파도를 보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파도의 그 움직임을 바라보게 된다. 그렇게 파도를 보고 있다 보면 저 멀리 수평선에선 고요하다가 뭍으로 가까워질 수록 펄떡이는 파도의 마음이 궁금하기도 했다. 마치 용왕의 다급한 메시지를 전하듯 가까워졌다가 이내 사라지는 파도가 일으키는 물보라는 늘 그렇게 흥미로웠다. 바다가 그렇게 드라마틱한 공간이라면 강은 또 다르다. 강은 바다만큼 변화가 잦은 곳이 아니라 강을 마주보고 있는 건 거울이나 창을 마주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한다. 화가 나거나 흥분한 마음 상태일 때 강을 바라보고 있으면 한 길 물속이 전하는 이야기가 들리는 것 같아서 귀를 기울이게 된다. 늦게라도 강을 좋아하게 된 건 무척 기쁜 일이고 그래서 영화 속에 강이 등장하면 늘 반갑고 좋았다. 신준 감독의 데뷔작 '용순'에는 여름의 강이 여러 번 등장한다. '용순'은 첫사랑을 만난 10대 소녀의 두근 반 세근 반 달음박질을 경쾌하고 애틋하게 담아낸 영화다. '침묵', '차이나타운' 등을 통해 연기력을 인정받은 배우 이수경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는 이 작품에서 강은 용순의 좋은 친구로 등장한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낯선 마음 그리고 그 마음을 갖고 싶은 벅찬 마음을 용순은 강물에다 쓰고 지운다. 아무 대답도 없는 듯 하지만 강은 어찌할 줄 모르고 뛰어 대는 소녀의 박동을 부드럽게 감싼다. 땀방울로 가득한 용순의 마음을 다독이는 강은 믿음직스러운 울타리 같기도 하다. 그렇게 그림같이 우거진 산의 풍경과 천천히 흐르는 강의 움직임을 보는 것 만으로도 한숨 돌리게 되는 영화가 '용순'이다. 바람에 나부끼며 춤 추는 녹색의 잎들을 바라보는 것 만큼이나 강의 고요한 흐름을 바라볼 수 있는 건 여름의 즐거움 중 하나다. 어디론가 천천히 물길을 열어가는 그 작은 흔들림과 물보라를 느껴보길 바란다. 도심천의 작은 물줄기들 또한 그 아름다움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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