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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세상] 그곳에 모여 함께 침묵하고 버티는 힘
버틀러의 '연대하는 신체들과 거리의 정치'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입력 : 2020. 08.14. 00:00:00
2010년대 세계 곳곳 집회
비폭력 원칙 따라야 성공


"네 이웃을 사랑하라." 이 평범한 명령을 저 먼 곳에서 들려오는 초연한 '말씀'이 아니라 가까이에서 느끼고 책임지려 했던 적이 있는가. 미국의 철학자 주디스 버틀러는 이 세계에서 살아가는 일 자체가 나와 너 사이의 관계에 의해 일어난다고 주장하며 불안정 상태에 처한 사람들의 집회가 가진 의미를 들여다봤다. 2010년 브린 모어 대학교에서 진행한 시리즈 강연문을 포함 여러 장소에서 낭독한 글을 바탕으로 엮은 '연대하는 신체들과 거리의 정치'다.

버틀러는 과연 누가 불안정성에 더 취약한 인구인지, 누가 경찰 폭력의 대상이 되고 있는지, 누구의 정당한 목소리들이 거부되고 있는지 묻고 있다. 이는 인종차별, 미등록 이주민에 대한 차별, 젠더 소수자에 대한 혐오 등 타자의 생명을 보존하고 그들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책무가 제대로 실천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동시대 지배적 이데올로기는 민족/국가주의 공동체, 신자유주의식의 책무 등 경제적 자립과 자기 자신을 책임지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간주한다. 따라서 삶이 불안정하고 취약하다는 것은 신자유주의적 맥락에서는 수치와 고통의 근원이다. 누군가를 딛고 올라가서 뒤처진 자들을 혐오하거나, 혹은 뒤처진 자신을 혐오하도록 강요하고 있는 탓에 더 불안정하고 더 취약한 집단에 속한 이들은 집단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를 개인적 무능이나 무책임으로 돌린다.

그러나 '권리를 가질 권리'를 요구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의 저항은 자신의 문제를 전체 사회의 구조 문제로 확장하는 몸짓이다. 버틀러는 2010년대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가시적이고 비가시적인 집회, 시위에서 그런 저항을 읽어내려 했다.

여기에서 폭력적인 방법을 사용해 목적을 관철시킨 경우는 극히 예외적이다. 대부분은 단지 거리에서 함께 모여 있거나 함께 침묵을 지키고 있거나 지금 있는 그 자리를 떠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버틀러는 비폭력의 원칙을 따라야 집회 혹은 연대가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비폭력을 두고 "대립이 일어나는 어떤 공간에서 자기 스스로 그리고 다른 이들과 함께 견디고 절제하며 처신하는 방식"이자 "살아 있는 존재의 불안정한 특성을 헤아리는 일상적 실천"이라고 정의했다. 김응산·양효실 옮김. 창비. 2만3000원. 진선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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