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사는 미술치료사 정은혜씨는 친구들과 한 번도 싸운 적이 없는 아이였고 그걸 자랑스레 말했었다. 경쟁하지 않는 착한 아이는 어른이 되어 허전한 감정을 느꼈다. 관계의 중심에 들어가 있지 못하는 데서 오는 거였다. 아이들 놀이에서 있는 듯 없는 듯 끼워서 같이 노는 '깍두기'처럼 싸우지도 않고 영향을 미치지도 않는 존재였던 것이다. 그가 '깍두기'에서 벗어난 계기는 제주도 중산간 마을로 이사해 매일 만나다시피 하는 친구와 싸우기 시작하면서다. 정말 좋은 동갑내기 친구였지만 예상과 달리 싸울 일이 계속 생겼다. 놀라운 것은 그렇게 싸우면서도 관계가 나빠지기는커녕 서로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다. 싸움의 궁극적인 목표는 싸움을 일으키는 갈등을 넘어서는 것, 즉 관계의 성장과 자기 이해라는 결론에 다다른 그가 한 권의 책을 묶었다. '싸움의 기술'이다. 여기서 말하는 싸움은 힘의 불균등에서 시작해 자신은 다치지 않고 상대방만 일방적으로 다치게 하는 폭력과는 구별된다. '싸움의 기술'은 제목 그대로 '실전법'을 일러준다. 거기엔 초급, 중급, 최후의 방법 등 단계별 기술이 있다. 초급이라고 얕잡아볼 일이 아니다. 언제 어디서 싸울지, 싸움 전후에 뭘하면 좋을지, 말과 행동의 데드라인을 어디까지로 할지 등을 익혀야 초급 기술을 써볼 수 있다. 먼저 급소(감정적 촉발 포인트)는 피하고, 화를 내되 경멸하지 말고, 쓰러진 사람을 또 찌르지 말고, 싸잡아 싸우지 말고, 꼬투리 잡지 말고, 무엇보다 개싸움은 피하고, 싸웠다면 싸운 만큼 회복해야 한다. 저자는 결국 모든 싸움이 사랑을 요청하는 이야기라고 했다. 싸움을 하는 동안에 못난 말들이 튀어나오고 찡그린 표정을 짓지만 그 속에 서로에게 인정받고 싶은 연약한 마음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 싸움의 기술을 쓰며 그에 걸맞게 반응하고 그 사람의 뾰족함을 끌어안을 수 있다면 싸움은 우리에게 소중한 선물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샨티. 1만6000원.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이 기사는 한라일보 인터넷 홈페이지(http://www.ihalla.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문의 메일 : webmaster@ihall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