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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에 무너진 정의현성... 복원작업 계획 보니

김원순 시민 기자 hl@ihalla.com
입력 : 2020. 09.07. 21:02:31
중요민속자료 제188호(1984년 8월 7일 지정) 성읍민속마을을 포함한 정의현성과 관련해 태풍에 무너진 곳에 대한 보수계획 세웠다.

정의현성과 제주방어 유적을 알아보자. 제주에 방어유적으로는 누구나 잘 아는 3성, 9진, 25봉수, 38연대 외에 고려 때 김수, 고여림 두 장수가 적이 방어를 위해 제주도 바다를 두른 환해장성 등이 있다. 그 중에 정의현성은 태풍 때마다 수난을 당하고 있었고 이번에 보수작업을 한다.

보수한 장소가 다시 보수 하는 것은 감독관청에 문제가 있다. 배부름 현상은 보수할 당시 기존에 있는 외벽돌(비교적 큰돌)과 짜 맞춤이 맞물리지 않았다는 증거도 되고 또 하나는 외부 돌에 비해 내부 잡석(뒷채움석)이 너무 많이 넣어서 시간이 흐르면서 안에 채운 돌이 밖으로 삐져나오는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정의현은 1416년 5월 오식 제주목사 건의로 삼읍을 둘 때 처음에 성산읍 고성에 있다가 우도가 앞에 있어 적이 침입에 노출되고, 동서간 거리가 너무 멀어(동, 서 90리) 관료들 순차하기도 어려워 지금에 장소인 성읍으로 옮기게 됐다. 지금의 장소로는 1420년(세종 2) 도안무사 겸 목사 정간이 진성을 진사리로 정하고 1423년(세종 5) 정월에 옮겼다. 성의 규모는 동서 160m, 남북 140m, 높이 4~6m, 둘레 1150m 제주도 방어시설로는 비교적 잘 보존되고 있는 편이다. 성읍리는 해발 120m 지형이 북고남저로 완만한 경사면에 있다.

목사 정간이 진사리로 성을 옮길 것으로 정해 삼읍의 백성을 동원해 제주목 판관 최치럼(崔致廉)에게 명해 감독토록 했다. 최공은 후박을 헤아리고 고저를 측정해 도역을 계산하고 공사의 기한을 따져서 엄하게 명령을 시행해 규정된 역사를 독려하니 높직한 궁가에 삼문이 세워졌다. 그해가 계묘년(세종 5) 1423년 5월에 시작해 13일에 마쳤으니 최공이 매우 신기해했다.

정의현성에는 돌하르방도 과거의 장소에 비교적 남아 위치 보존이 잘 되는 편이고 보수 후에도 제발 제주읍성이나 대정현성과 같은 성의 분위기로 가지 말도록 각별히 주의하여 보수하기를 바랄 뿐이다. 비록 힘 없는 백성이 글이지만 행정에서는 잘 관리하고 중간 중간 현장 점검도 하면서 옛 성의 모습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제주말로 고르민 “연날 것들 옮기거나 보수 헐 때랑 제발 졸바로덜 해줍써 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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